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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와 사상 ==
==== 유년시절과 교육 ====
프뢰벨은 [[정통주의]] [[루터교회]](Orthodox Lutheran Church) [[목사]]의 아들로서 독일 튀링겐의 오버바이스바흐(Oberweissbach)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막내이다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9개월 때에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고독한 [[유소년기]]를 보낸다보냈다. 4세에 [[계모]]가 들어오지만생겼지만, 새로운 어머니의계모의 친자식이 태어나자 소외당하게 되었다.
 
10세 때, 친어머니의 오빠인오빠이자 호프만또한 삼촌이성직자였던 호프만이 그의 집을 방문하고 실정을 알게되자알게 되자, 프뢰벨을 4년간 돌보았다. [[백부]]도 [[성직자]]였는데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프뢰벨은 [[학교]]에서학교에서 많은 친구들를 사귀었으며, [[1799년]] 10월 [[예나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입학하였다. [[프리드리히 시라실러]] [[역사]]를, [[프리드리히 시링빌헬름 요제프 셸링|프리드리히 셸링]]은 철학을 가르치고 있던 시기이다. 학비를 댈 수 없게 되자 프뢰벨은 [[1801년]]에 퇴학한다.퇴학하였고 다음해인 [[1802년]]에는 아버지가 별세한다별세했다.
 
==== 교육활동 ====
대학교를 학비문제로학비 문제로 그만둔 후, 밴 베루크의 산림국에서 [[서기 (직급)|서기]], [[측량사]] 조수, [[귀족]] 농장의 회계 등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1805년]] 안톤 그르나의 소개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모범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학교 교사가 된 후 [[1805년]] [[8월]], 이베르돈에 있는 [[페스탈로치]]를 방문하고 그의 실천과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아 [[1808년]]부터 2년간 [[페스탈로치]]의페스탈로치의 아래에서 머물렀다.
 
[[1816년]] 11월 말 튀링겐의 그리스하임에 일반독일교육원(Allgemeine Deutsche Erziehungsanstalt)을 설립하고 이듬해 루돌슈타트(Rudolstadt) 인근의 카일하우(Keilhau)로 이전했다. 1818년에는 베를린 명문가의 딸 빌헬르미네 호프마이스터(Wilhelmine H. Hofmeister)와 결혼하여 카일하우에서의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사립 교육 기관에서 ‘공의 법칙’에 근거한 수업을 통해 초등학교 및 [[김나지움]]의 인간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다. 프뢰벨은 1826년 자신의 주저 ≪[[인간의 교육]]≫을 저술했고 1833년에는 ≪인간 교육의 개요≫를 발간했다. 어린이 교육을 새롭게 하기 위해 1840년에 일반독일유치원(Der Allgemeine Deutsche Kindergarten)을 설립했다. 1842년에는 유치원 여교사 과정을 개설했으며 ≪어머니와 애무의 노래≫를 1844년에 발간했다. 프뢰벨은 1845년부터 수 년 동안 자신의 유치원 교육학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강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1851년]] 8월 프뢰벨이 설립한 유치원이 [[무신론]]적이며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에서 [[프로이센]] 곧 [[독일]]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프뢰벨은 공개적인 의견 표명을 통해 이러한 조처를 해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이듬해인 [[1852년]] 6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 교육사상 ====
프뢰벨은 [[어린이]]의 본질을 신적인 것으로 해 파악하였으며, 이러한 아동관에 근거하여 수동적이고 추종적인 교육을 주장했다. [[정원사]]가정원사가 [[식물]]의식물의 본성에 따라서 [[물]]이나물이나 [[비료]]를비료를 주고 햇빛과 [[온도]]를온도를 고려하며 [[가지치기]]를 해주듯이, 교육자도 아이의 본질에 따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킨더가르텐'({{llang|de|Kindergarten}}{{해석|어린이들의 뜰}}{{해석|[[유치원]]}})도 이러한 교육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인간 발달의 연속성을 주장하였다. 그러한 입장에서 어린이의 공감적 이해와 거기에 기초를 두는 교육을 지지하고 [[조기교육]]에는 반대했다. 하느님을 부지런한 창조자로 파악한 그는 아이는 신적 본질을 가지는 존재로서, 창조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유치원]]의유치원의 [[교육]] 내용이 [[놀이]]나놀이나 작업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놀이]] 도구를 고안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킨더가르텐([[유치원]])'은 그가 만든 말로서,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유아 교육을 위한 학교를 'Kindergarten', 'Kindergarden' 등으로 부르고 있다. [[유치원]]에서유치원에서 [[놀이]], [[그림 그리기]], [[생활 체험]] 등이 중시되고, [[정원]]과정원과 [[화단]]이화단이 있는 것도 프뢰벨의 교육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지만지|제목=인간의 교육|주소=http://zmanz.blogi.kr/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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