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촉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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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승상이 된 [[조조]](曹操)는 마초까지 초빙하지만 마초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뒤 사례교위 독군종사가 되어 평양현 [[곽원 (후한)|곽원]](郭援)과 [[고간 (후한)|고간]](高幹)을 토벌하고 '''이때 전장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촹에서도상황에서도 마초는 다리를 포대로 싸매고 계속 싸우는 용맹함을 발휘하였고 결국 마초가 [[곽원 (후한)|곽원]]을 격파하자 마초의 부하 [[방덕]](龐德)이 [[곽원 (후한)|곽원]]의 목을 베었다.<ref>관장마황조전(關張馬黄趙傳)</ref>'''
 
이윽고 조칙으로 서주자사가 되고 이후 간의대부에 임명된다. 그 뒤 아버지 [[마등]]은 [[한수 (후한)|한수]]와 사이가 벌어져 위위로 조정에 소환되고, 동생 [[마휴]](馬休)와 [[마철]](馬鐵)도 각기 봉거도위, 기도위에 임명되어 모두 [[업 (중국)|업]](鄴)으로 이주했다. 편장군이 된 마초만 양주에 남아 [[마등]] 군영을 장악해 통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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