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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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단은 바위의 표면을 깎아내어 가로 약 106.1㎝․세로 약 51.5㎝․높이 약 6.1㎝로 되어 있고, 제2단은 여기에 폭 18.2㎝․높이 약 4.8㎝ 되는 면을 둘러쌓았으며, 제3단은 다시 폭 18.2㎝ 되는 면을 둘렀다. 그런데 제3단은 그 앞면을 제외하고는 세 방향 모두 떨어져나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 더욱이 각 단 모두 바위가 부식하고 또한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까닭에 그 넓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 비석 받침의 중앙에는 폭 71.5㎝․두께 16. 6㎝쯤 되는 장방형의 홈을 파서, 이곳에 비신(碑身)을 깊숙이 세웠다. 지난날 비신은 이곳에 동남쪽으로 70°쯤 기울어진 방향으로 꽂혀져서 현저하게 뒤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순수비는 건립 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무학|무학대사]](無學大師)의 왕심비(枉尋碑) 혹은 글자가 없는 소위 몰자비(沒字碑)로 알려져 오다가, 19세기 초 [[김정희]](金正喜)가 승가사에 들렀다가 이곳에 찾아와 이끼로 뒤덮인 비면을 닦아내고 판독함으로써 진흥왕순수비임이 알려졌었다. 진흥왕순수비는 북한산비 이외에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마운령비]](摩雲嶺碑),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황초령비]](黃草嶺碑),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창녕비]](昌寧碑) 등이 있다. 이전 직후인 [[1972년]] [[8월 16일25일]]에 비를 이전했다는 사실을 적어놓은 모조비를 이곳에 세워놓았다가 2006년 10월 19일에 모조비를 철거하고 원래의 비석과 유사하게 만든 복제비를 새로 설치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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