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르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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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ungarian migration.jpg|thumb|right|300px|헝가리인의 이동 경로]]
기마 유목 민족이었던 헝가리인은 기원전 5세기 경 중앙아시아의 [[우랄 산맥]] 부근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ref name="세계를 가다"/> {{Rp|819}} 헝가리인은 9세기에 우랄 산맥에서 볼가 강을 따라 북코카서스<ref name="오카다"/>{{rp|19}}, [[흑해]]의 북쪽인<ref>사무엘 크럼프턴 저, 김일수 역, 승자와 패자가 만드는 백가지 전쟁, 미토(2002) ISBN 89-953304-5-7 20쪽에는 "흑해의 남쪽"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흑해의 남쪽은 현재의 터키이므로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ref> 우크라이나 초원을 맴돌다가, 유목생활에 유리한 지역을 발견했다.<ref name="사무엘"/>{{rp|20}} 그곳은 카르파티아 산맥과 도나우 강 사이에 위치한 헝가리 대평원이었다. <ref name="사무엘"/>{{rp|20}} 헝가리 대평원은 슬라브 주거지의 한복판이었다.<ref name="오카다"/>{{rp|19}} 이렇게 헝가리인이 유럽 무대에 처음 진출한 것은 895년이었다.<ref name="사무엘"/>{{rp|20}} 헝가리인은 현재 헝가리인의 땅인 헝가리 분지(카르파티아 분지)를 896년에 정복하였다.<ref name="세계를 가다"/> {{Rp|819}}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조를 세운 아르파드 대제가 스스로 [[아틸라]]의 혈통임을 내세워 영토와 민족의 지배권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혈통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다. 헝가리의 훈족기원설이 과연 타당한지 살펴보자면 우선 헝가리 족은 유목민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농지를 개간했기 때문이다. <ref>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저, 이지영 역, 《역사의 오류: 되짚어볼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 50》열음사(2008) ISBN 978-89-7427-190-9</ref>{{rp|77}} (→ 이후 정착지에서의 역사에 대해서는 [[헝가리의 역사]] 참조)
---> 독일인이 지은 책을 보고 단정짓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주한 헝가리 대사가 자기 국민들은 한국같은 아시아 민족과 연관성이 높다(외모, 풍습, 언어)고 했고, <칸의 후예>라는 헝가리 영화에서 그들은 훈족이나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말갈이라는 한자어의 현대 발음이 마자르와 전혀 다르지만 고대 중국어에는 입성(받침)이 존재했으므로 말갈은 마르가르, 마르자르와 비슷하게 발음되었을 것이다. 만일 말갈이 헝가리인과 전혀 관계없다면 중앙아시아 널리 분포되어 있던 돌궐(투르크의 한자음역)이 왜 지금은 흑해 주변에 정착했는지도 의심해야 한다. 숫사슴이 신부를 찾는 전설은 사냥을 하던 민족이 농경민족(현재 헝가리 지역의 원주민)과 연합하는 것을 비유하는 상징이라고 본다. 단군신화의 호랑이 토템과 곰 토템 부족이 쑥과 마늘(문명)을 먹는데 호랑이 부족이 실패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 보여진다.
 
[[1867년]]에서 [[1918년]]까지 존재하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는 [[헝가리어]]도 [[독일어]]와 함께 [[공용어]]였을 만큼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군주는 [[독일인]]의 [[프란츠 요제프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