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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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욕설
대마도는 한국땅이야 이개새끼들아
{{다른 뜻 넘어옴|대마도|조사=는}}
이종무장군이 대마도점령하셨어
{{영유권 분쟁 중인 섬 정보
미개한일본인 들아 ㄲㅈ
|이름=쓰시마
|다른이름=대마도
|그림=Tsushima island ko.png
|지도=
|좌표=
|면적=696.10 km²(본섬)<br />708.5 km²(부속섬 포함)
|최고점=
|높이=
|위치=[[동아시아]]
|나라=일본
|행정구역이름=현
|행정구역=[[나가사키 현]]
|행정구역2이름=시
|행정구역2=[[쓰시마 시 (나가사키 현)|쓰시마 시]]
|나라1=대한민국
|나라1행정구역이름=도
|나라1행정구역=[[경상남도]] [[대마군]]
|나라2=일본
|나라2행정구역이름=현
|나라2행정구역=[[나가사키 현]]
|인구 =
|인구년도 =
|구성집단 = [[일본인]], [[한국인]]
}}
 
'''쓰시마 섬'''({{ja-y|対馬|つしま}}, {{문화어|쯔시마 섬}}) 또는 '''대마도'''(對馬島)는 [[한반도]]와 [[규슈]] 사이의 [[대한해협]] 중간에 있는 [[일본]]의 [[섬]]이다.
 
== 지리 ==
[[규슈]]까지의 거리는 약 132km, [[한반도]]와의 거리는 약 49.5km로 한반도 쪽에 더 가깝다. 섬 크기는 남북에 82km, 동서에 18km이다. 섬 넓이는 700km²이며, 섬의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34,610명이다. 농경지는 전면적의 3.4%이며, 대부분이 산지이다.
 
관광업이 번성하였고, [[일본]] 이외에, [[대한민국]], [[중국]] 등에서 많은 관광객이 온다.
 
== 역사 ==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6세기전반 [[아스카 시대]]에는 [[쓰시마 도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 [[왜구]]의 소굴이 되자, [[1389년]]([[고려]] [[창왕]] 2년)에는 [[박위]]가 쓰시마를 토벌하였다.
 
조선 국왕은 [[왜구]]들에 대한 회유책(懷柔策)으로 통상의 편의도 봐주고 또 귀화 정책을 쓰는 등 우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행패가 여전하자 세종 때인 [[1419년]] [[음력 6월]] [[조선]]의 [[세종]]이 [[이종무]]에게 명을 내려 군사 1만 7285명을 동원하여 [[대마도 원정]]을 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쓰시마 도주의 간청으로 왜인의 통상을 위하여 3포를 개항하고 그들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또한 조선의 국왕이 대마도주에게 관직을 내려 그들을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도 조선에 근접한 [[왜구]]의 근거지로서, 이것을 무마하려는 한국의 해방정책(海防政策)에 따라 특수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후에도 조선은 쓰시마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했으나,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차츰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는 [[쓰시마 후추 번]](對馬府中藩)이 설치되었고, 쓰시마 도주인 소(宗) 가문이 [[쇼군]](將軍)으로부터 [[다이묘]](大名)로 임명을 받았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계기로 1871년에 [[폐번치현]](廢藩置縣)으로 인하여 쓰시마 후추 번이 폐지되고, [[이즈하라 현]](嚴原縣)이 설치되었다. 1876년에 [[나가사키 현]](長崎縣)에 편입되었으며, 소 가문은 일본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일본 제국]]의 강요로 소 가문과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다.
 
쓰시마 섬은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672년 21대 도주이자 [[쓰시마 후추 번]] 3대 번주인 [[소 요시자네]](종의진,宗義眞)때 작은 배가 아소만과 대마도 동부를 왕래할 수 있도록 오후나고시(대선월,大船越)이라는 운하를 만들어 두개의 섬으로 나뉘었고 1900년 [[일본 제국 해군]]이 [[러일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소만(浅茅湾)에 있는 군함을 쓰시마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제키세토(万関瀬戸)라 불리는 더 큰 폭의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만제키세토는 쓰시마 섬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경계로, 쓰시마 섬 북부를 가미시마(上島), 남부를 시모시마(下島)라 부른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쓰시마)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1948년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1949년 1월 7일에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ref name="chosun0725">{{뉴스 인용|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5/2008072501220.html| 작품명 =조선일보| 제목 = <nowiki>[Why] "대마도는 우리 땅" 역사 근거 많다 </nowiki>| 저자 = 이한우 기자 | 인용 =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사흘 뒤인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그해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언어 = 한국어
| 확인일자 = 2009-05-27| 작성일자 = 2008-07-25 }}</ref><ref>{{웹 인용|url=http://bbs.dreamwiz.com/BIN/dreambbs.cgi?b=dic_eco&c=v&key=&word=&n=178&f=dic&m=&lc=15&up=|제목=드림위즈사전 : 오늘속의 역사 -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 일본에 반환요구|발행일자=2006-01-07|출판사=드림위즈 사전|확인일자=2010-01-12}}</ref> 또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에서 [[4월 27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였다.《2013년 3월 22일에는 대한민국 경기도에 위치한 의정부시의회가 대마도 반환을 촉구 하는 한편 대한민국정부차원의반환 촉구를 요청하고 있다. 》
 
최근에는 일본의 한 언론에서 "한국이 쓰시마 섬을 넘본다"라는 기사를 써서 영토분쟁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81&aid=0001969861|제목=日언론 “한국이 쓰시마를 넘본다” 호들갑|발행일자=2008-08-29|출판사=서울신문|확인일자=2010-01-12}}</ref> 그리고 산케이 신문에서는 "쓰시마가 위험하다"라는 쓰시마 위기론을 기사로 써 넣었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1&aid=0002325194|제목=日 산케이 '쓰시마 위기론' 제기|발행일자=2008-10-21|출판사=연합뉴스|확인일자=2010-01-12}}</ref>
 
=== 2008년 일본의 독도 교과서 명기 사건 관련 ===
[[2008년]] 일본 정부가 중학 교과서에 [[독도]] 관련한 자국 영토 주장을 하기로 하자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상대하기 위한 쓰시마 섬의 영유권 주장을 언급하는 일이 있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최고의원 [[허태열]]은 2008년 7월 16일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유권 주장의 예와 B형간염유전자의 유사성을 예로 들며 쓰시마 섬의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299201.html|제목=허태열 “대마도 우리땅이라 하자” 한나라 지도부회의 맞아?|발행일자=2008-07-16|출판사=한겨레|확인일자=2010-01-12}}</ref>
 
=== 대마도포럼 ===
[[2010년]] [[9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37명 의원들은 대마도 포럼을 창립하였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포럼 창립식에서 "대마도는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며 "대마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초대 제헌국회에서의 영유권 주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의 반환 요구 이후로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러왔다"고 지적하였고 여야 의원들은 일본이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는 대마도를 조속히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실제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깝고 대마도 주민의 혈통조사에서도 한국 혈통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대마도 영유권 주장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을 설립 목적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포럼 소속 의원들은 향후 활동과 관련, 매년 상반기(3월)와 하반기(11월)로 나눠 정책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결의안 채택과 국민운동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2813020004100 "대마도는 우리땅" 여야 의원 37명 대마도포럼 창립] [[아시아경제]] 2010년 9월 28일 작성</ref>
 
== 대마도의 날 ==
{{본문|대마도의 날}}
 
== 영토 분쟁 ==
{{본문|쓰시마 섬 분쟁}}
 
== 같이 보기 ==
* [[대마도 분쟁]]
* [[대마도의 날]]
* [[대마도 한국전망대]]
* [[쓰시마 섬 정벌]]
* [[쓰시마 후추 번]]
* [[이종무]]
* [[조중변계조약]]
* [[하와르 제도]]([[:en:Hawar Islands]]) - [[바레인]]과 [[카타르]]의 분쟁 섬들
 
== 주석 ==
<references/>
 
== 바깥 고리 ==
{{commons|Tsushima}}
* [http://www.tsushima-busan.or.kr/ 쓰시마 부산 사무소 (대마도 관광물산협회 홈페이지)]
* [http://www.city.tsushima.nagasaki.jp/foreign/profile/korean.html 쓰시마시 홈페이지 (한국어)]
 
 
{{대한민국과 그 주변국의 지리적 분쟁}}
 
{{글로벌세계대백과}}<!-- 〈조선초의 대외관계〉 -->
 
[[분류:일본-한국 관계]]
[[분류:나가사키 현의 섬]]
[[분류:쓰시마 시 (나가사키 현)]]
[[분류:동해의 섬]]
[[분류:대한해협]]
[[분류:아시아의 영토 분쟁]]
[[분류:일본의 영토 분쟁]]
[[분류:대한민국의 영토 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