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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金寧 金氏)는 [[한국경상남도]] 성씨이다[[김해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금녕 김씨라고도 칭한다.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이다.
 
== 시조 ==
김녕 김씨(金寧 金氏)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김녕군(金君)에 봉해졌으며, 명종 때에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하는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식읍을 하사받고 상락군금주군(上洛金州君)에 봉해졌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039_107_0046}}</ref> 김시흥은 신라 김씨의 시조 대보공 [[김알지]]의 35세손이다. <ref> [http://www.kyoungk.com 김녕김씨 중앙종친회] </ref>
 
== 본관 ==
== 인물 ==
김시흥의 증손자 김중원(金重源)이 고려조에 안렴사(按廉使)를 거쳐 형부시랑(形部侍郞)을 지내고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증직(贈職)되었다. 고려조 공양왕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김광저(金光儲 : 김중원의 손자)는 무록산(武鹿山)에 들어가 불사이군의 충절로 절의를 지켰는데, 조선조 태종이 이조판서(吏曹判書)의 벼슬을 내려 그를 회유하려 했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등극대업에 공헌하여 [[조선]] 개국 일등공신으로 익화군으로 봉해진 9세손 충민공 김인찬, 후에 [[사육신]]에 추가된 [[도절제사|함경도절제사]] 충의공 [[김문기]], 노모를 등에 업고 팔공산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유부(金有富)와 그의 아들 김기남(金起南), 김난생(金蘭生) 형제는 병자호란에 순절하여 김준걸(金俊傑 : 선조 때의 공신), 김득성(金得誠), 김영길(金永吉 : 선전관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 부자와 함께 이름을 날렸으며, 김진행(金鎭行)은 효행으로 정표(旌表)를 받아 충과 효의 전통을 이어왔다. 항일독립 의병대장 벽산 [[김도현]], 독립군 양성 군관학교를 설립한 김한종, [[기미독립운동]] 33인 중 김병조, [[대한민국]] 제8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 등이 있다.
 
== 과거 급제자 ==
김녕 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 문과
김용덕(金溶悳) 김진영(金鎭永)
 
; 무과
김경초(金慶礎) 김남준(金南俊) 김성현(金聲顯) 김우달(金羽達) 김정호(金鼎豪)
김처행(金處行)
 
; 생원시
김만원(金萬源) 김승룡(金昇龍) 김우성(金宇聲) 김인호(金仁浩) 김재성(金在性)
 
; 진사시
김경성(金擎成) 김봉선(金鳳善) 김서범(金書範) 김성모(金性模) 김용직(金溶直)
김지원(金止源) 김홍란(金鴻欒)
 
== 항렬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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