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라 애 단마르크 왕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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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
{{왕족 정보
|이름 =덴마크의 튀라
|그림 = Princess Tira of Denmark.jpg
|원어 이름 = Thyra Amelie Caroline Charlotte Anna
|왕가 = 혼전:[[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br>혼후:[[하노버 왕가]]
|칭호 = 덴마크 공주 튀라, 하노버 왕태자비,
|배우자 =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컴벌랜드 공작부인
|출생일 = {{출생일|1853|9|29}}
|왕가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왕가]]
출생|출생지 = {{국기 나라국기나라| 덴마크}} [[코펜하겐]] [[Yellow Palace]]
(혼전)
사망|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853|9|29|1933|2|26}}
[[하노버 왕가]] (혼 후)
|사망지 = {{국기 나라국기나라| 오스트리아}} [[Gmunden그문덴]]
|배우자 = 하노버 왕태자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자녀 = [[바덴 왕자비 마리-루이제]]
[[하노버의 게오르크-빌헬름 왕자]]
[[메클린부르크-슈베린 대공비 알렉산드라]]
[[하노버의 올가 공주]]
[[하노버의 크리스티안 왕자]]
[[브런스윅 공작 에른스트-아우구스투스 3세]]
[[케이트 율겐센]]
아버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
어머니| [[헤세-카셀의 루이제]]
출생| {{국기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 [[Yellow Palace]]
사망| {{사망일과 나이|1853|9|29|1933|2|26}}
{{국기 나라| 오스트리아}} [[Gmunden]]
}}
 
'''덴마크 공주 튀라'''는 1853년 당시 추정 왕위 계승자였던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세-카셀의 루이제 사이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는 덴마크 국왕의 친척이었으므로 튀라와 남매들은 유대감 깊게 자라났다. 튀라는 다른 자매들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 공주]]나 [[덴마크의 다우마|다우마 공주]]처럼 매우 아름답진 않았으나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처녀였다. 튀라는 공주 시절, 덴마크 마체르 장교와 사랑에 빠졌고 곧 튀라는 임신을 하게된다. 튀라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는 마체르와 면담하게 되었는데, 당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고 하니, 국왕은 둘의 결혼을 반대 한 것이 틀림없다. 또한 곧, 마체르는 자살한다. 튀라는 몇개월 후 오빠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를 공식적으로 '아프게'되지만 사실상 튀라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으러 간 것 이라고 한다. 튀라의 아이는 얼마 후 덴마크에서 마리아라고 세례를 받지만, 그 후 행방을 알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율겐센 부부에게 입양된 케이트 율겐센이 튀라의 딸이라고 한다. 비록 튀라가 미혼모라지만 왕비는 딸의 혼처를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어 했고 결국 튀라는 멸망한 하노바 왕국의 마지막 왕세자인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한다. 튀라는 공식적인 첫 임신때에 첫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해하지만 남편이 잘 보듬어 주었다고 한다.
덴마크의 튀라 (티라)는 1853년 당시 추정 왕위 계승자였던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세-카셀의 루이제 사이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는 덴마크 국왕의 친척이었으므로 튀라와 남매들은 유대감 깊게 자라났다.
티라는 다른 자매들인 [[영국 왕비 알렉산드라]]나 [[러시아 마리아 표도르브나 황후]]처럼 매우 아름답진 않았으나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처녀였다.
티라는 공주 시절, 덴마크 마체르 장교와 사랑에 빠졌고 곧 튀라는 임신을 하게된다.
튀라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아버지 크리스티안 9세는 마체르와 면담하게 되었는데, 당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고 하니, 국왕은 둘의 결혼을 반대 한 것이 틀림없다. 또한 곧, 마체르는 자살한다.
튀라는 몇개월 후 오빠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를 공식적으로 '아프게'되지만 사실상 튀라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으러 간 것 이라고 한다. 튀라의 아이는 얼마 후 덴마크에서 마리아 라고 세례를 받지만, 그 후 행방을 알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율겐센 부부에게 입양된 케이트 율겐센이 튀라의 딸이라고 한다.
비록 튀라가 미혼모라지만 왕비는 딸의 혼처를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어 했고 결국 튀라는 멸망한 하노바 왕국의 마지막 왕태자와 결혼한다. 튀라는 공식적인 첫 임신때에 첫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해 하지만 남편이 잘 보듬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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