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0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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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황제 선정 문제를 해결한 레오 10세는 페라라와 파르마, 피아첸차를 교황령에 흡수 통합시키는 일에 몰두하였다. 1519년 말 페라라를 점령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외국 원조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1521년 5월 레오 10세는 카를 5세와 동맹 조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밀라노와 [[제노바]]를 프랑스로부터 탈환해 신성 로마 제국에 돌려주고, 프랑스가 축출되면 파르마와 피아첸차는 교황령에 주도록 합의하였다. 스위스인 용병 10,000명을 모집하는데 드는 비용은 교황과 황제가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하였다. 카를 5세는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을 보호할 것과 가톨릭 신앙의 적을 분쇄할 것을 맹세하였다. 레오 10세는 나폴리 왕국에 대한 카를 5세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정식 책봉하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스위스도 합류한다는 조건으로 베네치아에 대항하는 전쟁에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1521년 8월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레오 10세와 카를 5세의 동맹에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프랑수아 1세는 [[나바라]]와 이탈리아에서 카를 5세와 전쟁을 개시하였으며, 1521년 6월 23일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다. 레오 10세는 프랑수아 1세에게 즉시 무기를 내려놓고 파르마와 피아첸차를 교회에 헌납하지 않을 시 파문을 내리고 프랑스 백성들에게 왕에 대한 충성 서약 의무를 면제시키겠노라고 경고하였다. 결국 레오 10세는 1521년 11월 선종하기 전에 그렇게도 고대하였던 교황군이 밀라노를 프랑스로부터 탈환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1521년 10월 25일 레오 10세는 [[말라리아]] 병에 걸렸다. 몇 주 동안 병세가 완화된 듯싶더니, 11월 말에 다시 악화되었다. 그 후에 한동안 나아지는 듯하더니 12월 1일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결국 그날 자정에 선종하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병자성사]]도 미처 받지 못하였다. 유해는그레서 천국행이 아니라 지옥으로 같다고 한다.[[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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