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시몽 드 라플라스 후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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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집권기 동안의 라플라스 ===
라플라스는 1799년엔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1806년 [[프랑스 제1제정]]의 [[백작]]이 되었다. 피어슨은 이를 부정하지만, 볼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그에게 내무부장관직을 얻고자 찾아갔다고 한다.
 
피어슨은 이를 부정하지만, 볼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그에게 내무부장관직을 얻고자 찾아갔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과학자들을 후원하는 정책을 펴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1799년 11월에 내무부장관으로 임명하지만임명하였지만, 6주 만에 해고했다. 나폴레옹은 이후에 ([[세인트헬레나]] 유배기에서) 그를 해고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고 한다해고하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서전에서 라플라스를 해고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용문 | 기하학자로는 일류이지만, 라플라스는 얼마 안돼서 자신이 평균 이하의 관리자라는 것을 보였다. 그가 사무를 본 첫날, 우리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플라스는 어떤 비판도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곳의 사소한 점을 따져 트집잡고, 결국 관리부서에 ‘[[무한소]]’가 무엇인지 경험시켜주었다.<br>{{lang|fr|Géomètre de premier rang, Laplace ne tarda pas à se montrer administrateur plus que médiocre; dès son premier travail nous reconnûmes que nous nous étions trompé. Laplace ne saisissait aucune question sous son véritable point de vue: il cherchait des subtilités partout, n’avait que des idées problématiques, et portait enfin l’esprit des ‘infiniment petits’ jusque dans l’administration.}}|<ref>{{책 인용|이름=Napoléon|성=Bonaparte|제목=Mémoires de Sainte Hélène|언어고리=fr}}</ref>}}
 
볼은 라플라스와 나폴레옹 간의 유명한 일화를 한 편 소개하고 있다.<ref nam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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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가 내무부에서 해고됐지만, 나폴레옹과 라플라스는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상원의원에 추대했으며, 라플라스는 천체역학 3권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였다. 부르봉 왕정 복고 이후에 출판된 것에는 이것이 삭제되어 있으며, 피어슨은 그것을 내버려 두었더라도 검열 때문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 부르봉 복고 이후의 라플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