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마리노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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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노는 [[로마]] 태생으로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고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인근에 있는 [[치리아코|성 치리아코]]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900년에 그는 로마를 방문한 [[아우크스부르크의 울다리코|성 울다리코]]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마리노는 [[아우크스부르크]]에 [[마자르족]]의 침략을 받아 초토화가 된 이후에 교구장 주교로 울다리코가 서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ref>Mann, pgs. 218-219</ref>
 
마리노는 942년 10월 30일 로마 공작을 자처한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의 개입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마리노 2세는 교회의 행정 업무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재속 사제들과 수도 사제들의 규율을 정비하려고 했다. 그는 마인츠 대주교 프리드리히를 교황 총대리로 임명하고 독일과 프랑스 지역에 파견해 그곳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부정을 근절시키게 하였다.<ref>Mann, pg. 219</ref> [[카푸아]]의 주교 시쿠스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해당 교구 지역 [[베네딕도회]] 성당을 침입하자 마리노 2세가 즉시 개입했다.<ref>DeCormenin, Louis Marie; Gihon, James L., ''A Complete History of the Popes of Rome, from Saint Peter, the First Bishop to Pius the Ninth'' (1857), pgs. 290-291</ref>
 
교황은 교회의 세속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규율을 정비하고 [[로마]]의 성당을 복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군주들의 전쟁을 협상을 통하여 평화스럽게 하였다. [[카푸아]]의 [[주교]] 시쿠스가 몬테카시노를 침입하자 그것을 보호해주었다. [[마인츠]]의 [[대주교]] 프리드리히가 교황 총대리임을 확인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부정을 근절시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