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예교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7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잔글
후한이 멸망, 위나라가 성립하자 사예교위가 부활했고 서진도 이를 계승했지만, [[동진]]은 화북 지방을 상실했기에 사예교위직이 소멸했고 이후로 부활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화북을 실표지배하지실효지배하지 않았던 [[촉한]]에서 유비가 즉위했을 때 [[장비]]가 [[거기장군]]을 겸하여 사예교위에 취임했었다.
 
[[분류:중국의 관직과 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