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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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호민관]]인 [[술피키우스 루푸스]]는 마리우스와 협력하여 민회를 소집하여 술라가 부여받은 미트라데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마리우스에게 넘겨줄 것을 결의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으로 집정관 폼페이우스 루푸스의 아들이 죽고 루푸스도 도망쳤다. 술라는 잠시 피신했다가 다시 군사를 규합하고 로마로 진군하여 무력으로 점령한 후, 술피키우스-마리우스 일파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였다. 로마가 안정을 되찾자 술라는 집정관인 옥타비우스와 [[킨나]]에게 로마를 맡기고는 미트라다테스 정복전쟁에 나섰다.
 
[[기원전 87년]] 술라는 그리스 대부분을 장악하고 [[아테네]]를 공격했다. 당시 아테네는 피레우스에서 주둔한 아르켈라오스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아테네의 농성군과 로마군은 투석전을 벌이며 매우 치열하게 싸웠다. 술라가 아르켈라오스가 판 땅굴에 황과 역청을 집어넣고 불태우자 많은 아테네군이 죽었다. 술라의 공격에 질린 아테네에서 강화사절을 술라에게 보냈고, 그 사절은 술라에게 아테네인들의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술라는
[[기원전 87년]] 술라는 그리스 대부분을 장악하고 [[아테네]]를 공격했다. 당시 아테네는 피레우스에서 주둔한 아르켈라오스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아테네의 농성군과 로마군은 투석전을 벌이며 매우 치열하게 싸웠다. 술라가 아르켈라오스가 판 땅굴에 황과 역청을 집어넣고 불태우자 많은 아테네군이 죽었다. 술라의 공격에 질린 아테네에서 강화사절을 술라에게 보냈고, 그 사절은 술라에게 아테네인들의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술라는 "그런 시시한 역사강의는 그대의 동포들에게나 들려주시구려. 나는 그대들의 강의를 들으러온 학생이 아니라 아테네를 함락시키라고 보내진 장군이오"라고 답변했다. 곧 포위공격을 받아 식량이 덜어진 아테네는 술라에게 항복했다. 이어 술라는 [[보이오티아]]로 달아난 폰투스-그리스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기원전 86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술라의 15000명의 보병과 1500명의 기병은 아르켈라오스의 12만명의 대군과 싸웠다. 술라가 폰투스군에 접근하자 아르켈라오스는 기병을 출동시켜 로마군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80대의 낫을 단 폰투스 전차가 출격했으나 로마군은 전차를 피하듯 대열을 벌렸다. 전차가 통과하자 로마군은 측면에서 전차를 격퇴했다. 15000명의 폰투스 밀집보병 역시 격파되었다. 공격이 여러번 실패하자 아르켈라오스는 보병을 총출동시키면서 정예기병으로 술라군의 중앙을 돌파해 로마군 좌우익을 포위하였다. 술라는 그때 우익에 있었는데 로마군 좌익이 불리해지는듯 하자 좌익으로 갔다. 술라의 지원으로도 로마군 좌익은 여전히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술라가 로마군 우익으로 돌아오자 힘을 얻은 로마군 우익은 폰투스군 좌익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좌익에서도 적을 궤멸시켰다. 결국 아르켈라오스의 군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술라의 압승으로 카이네로이아 전투는 막을 내렸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폰투스군은 10만이나 죽은 반면 술라군의 손실은 12명에 머물렀다고 한다. 같은 해, 오르코메누스에서 아르켈라오스의 공격을 받은 로마군이 달아나려 하자 이를 말리다 뜻대로 되지않아 격분한 술라는 병사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시민들이여 훗날 누군가가 그대들에게 총사령관을 버린 곳이 어디였냐고 하면 오르코메누스였다고 답하라!" 이 말을 들은 로마군은 다시 전투의지를 다지고 다수의 적을 척살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기원전 85년]] 술라와 [[미트라다테스 6세]]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서 강화를 체결했는데 이 때도 술라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미트라다테스를 굴복시켰다. 술라는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대한 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다졌다.
 
"그런 시시한 역사강의는 그대의 동포들에게나 들려주시구려. 나는 그대들의 강의를 들으러온 학생이 아니라 아테네를 함락시키라고 보내진 장군이오"
 
[[기원전 87년]] 술라는 그리스 대부분을 장악하고 [[아테네]]를 공격했다. 당시 아테네는 피레우스에서 주둔한 아르켈라오스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아테네의 농성군과 로마군은 투석전을 벌이며 매우 치열하게 싸웠다. 술라가 아르켈라오스가 판 땅굴에 황과 역청을 집어넣고 불태우자 많은 아테네군이 죽었다. 술라의 공격에 질린 아테네에서 강화사절을 술라에게 보냈고, 그 사절은 술라에게 아테네인들의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술라는 "그런 시시한 역사강의는 그대의 동포들에게나 들려주시구려. 나는 그대들의 강의를 들으러온 학생이 아니라 아테네를 함락시키라고 보내진 장군이오"라고 답변했다. 곧 포위공격을 받아 식량이 덜어진 아테네는 술라에게 항복했다. 이어 술라는 [[보이오티아]]로 달아난 폰투스-그리스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기원전 86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술라의 15000명의 보병과 1500명의 기병은 아르켈라오스의 12만명의 대군과 싸웠다. 술라가 폰투스군에 접근하자 아르켈라오스는 기병을 출동시켜 로마군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80대의 낫을 단 폰투스 전차가 출격했으나 로마군은 전차를 피하듯 대열을 벌렸다. 전차가 통과하자 로마군은 측면에서 전차를 격퇴했다. 15000명의 폰투스 밀집보병 역시 격파되었다. 공격이 여러번 실패하자 아르켈라오스는 보병을 총출동시키면서 정예기병으로 술라군의 중앙을 돌파해 로마군 좌우익을 포위하였다. 술라는 그때 우익에 있었는데 로마군 좌익이 불리해지는듯 하자 좌익으로 갔다. 술라의 지원으로도 로마군 좌익은 여전히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술라가 로마군 우익으로 돌아오자 힘을 얻은 로마군 우익은 폰투스군 좌익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좌익에서도 적을 궤멸시켰다. 결국 아르켈라오스의 군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술라의 압승으로 카이네로이아 전투는 막을 내렸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폰투스군은 10만이나 죽은 반면 술라군의 손실은 12명에 머물렀다고 한다. 같은 해, 오르코메누스에서 아르켈라오스의 공격을 받은 로마군이 달아나려 하자 이를 말리다 뜻대로 되지않아 격분한 술라는 병사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시민들이여 훗날 누군가가 그대들에게 총사령관을 버린 곳이 어디였냐고 하면 오르코메누스였다고 답하라!" 이 말을 들은 로마군은 다시 전투의지를 다지고 다수의 적을 척살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기원전 85년]] 술라와 [[미트라다테스 6세]]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서 강화를 체결했는데 이 때도 술라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미트라다테스를 굴복시켰다. 술라는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대한 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다졌다.
 
"시민들이여 훗날 누군가가 그대들에게 총사령관을 버린 곳이 어디였냐고 물으면 오르코메누스였다고 답하라!"
 
이 말을 들은 로마군은 다시 전투의지를 다지고 다수의 적을 척살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기원전 85년]] 술라와 [[미트라다테스 6세]]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서 강화를 체결했는데 이 때도 술라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미트라다테스를 굴복시켰다. 술라는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대한 통치체제를 정비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다졌다.
 
=== 두 번째 내전 및 로마 진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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