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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 ===
적십자활동을 통해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포함한 전 재산을 모두 써버린 앙리 뒤낭은 [[1867년]]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이사하여 글을 옮겨적는 일을 하였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간의 [[보불전쟁]]이 벌어지자 앙리는 프랑스 국방위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구호활동을 하였다. [[1892년]]에는 [[스위스]]출신 [[의사]]의 배려로 알프스가 보이는 [[양로원]]에서 [[1910년]] 별세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1901년]]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초대제 1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앙리 뒤낭이 [[우울증]]을 앓았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엑슬리에서 만들고 중앙교육연구원에서 한국말로 옮긴 앙리 뒤낭 위인전에 따르면 앙리 뒤낭은 만년에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서로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로써 [[평화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 기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