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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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돌아온 [[기원전 97년]] 술라는 엄청난 뇌물을 뿌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법무관]](praetor)에 선출되었고 이듬해 전직법무관 자격으로 [[킬리키아]](Cilicia, 현재의 [[터키]] 남부)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로마의 정치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르티아]](Parthia)왕국의 대사를 만나 외교협상을 벌였고 훌륭한 외교력으로 로마의 이익을 가져왔다. 동방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귀족파(Optimates)에 가담하여 마리우스의 반대편에 섰다.
 
[[기원전 91년]] [[동맹시 전쟁]]이 벌어지자 술라는 남부전선에서 속전속결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고하여 특히 당시 로마 군단에서 최고의 무훈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잔디 왕관]](corona graminea, corona obsidionalis)"을 받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마리우스와 함께 마르시(Marsi)족을 격파하고 폼페야니(Pompeiani)족의 클루엔티우스(Lucius Cluentius)를 공격했다. 클루엔티우스는 전투에서 술라에게 패한 뒤, 놀라(Nola)로 달아났으나 술라에게 추격당해 20000명이나 죽고 클루엔티우스도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이후 술라는 히르피니족(Hirpini)의 아이쿨라눔(Aeculanum)을 점령하고, 삼니테스(Samnites)족의 가이우스 파피우스(Gaius Papius Mutilus)를 격파했다.
 
=== 첫 번째 내전과 미트라다테스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