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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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시 전쟁이 종결되자 [[기원전 88년]] 술라는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Quintus Pompeius Rufus)와 [[로마 공화정]]의 최고의 직위인 [[집정관]]에 선출된다. 이와 함께 술라는 세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카이킬리아 메텔라와 결혼하여 당시 유력 가문인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문의 후원을 얻었다. 집정관으로서 술라는 때마침 벌어진 [[폰투스]](Pontus)의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에 지휘권을 부여 받는다.
 
그러나 당시 [[호민관]]인 [[술피키우스 루푸스]](Publius Sulpicius Rufus)는 마리우스와 협력하여 민회를 소집하여 술라가 부여받은 미트라데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마리우스에게 넘겨줄 것을 결의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으로 집정관 폼페이우스 루푸스의 아들이 죽고 루푸스도 도망쳤다. 술라는 잠시 피신했다가 [[놀라]](Nola)에 주둔한 군사를 규합하고 로마로 진군하였다.<ref>술라의 제1차 로마진군으로 로마 역사상 최초의 성공한 쿠데타이다.</ref>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는 술라가 쿠데타를 일으킬지 꿈에도 몰랐으며, 술라가 로마로 진군한다는 소식에 로마에서 탈출했다. 술라는 로마를 무력으로 점령한 뒤, 술피키우스-마리우스 일파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였다. 마리우스는 아프리카로 도주했고 술피키우스는 참수되어 술라에게 보내졌다. 로마가 안정을 되찾자 술라는 집정관인 옥타비우스(Gnaeus Octavius)와 [[킨나]](Lucius Cornelius Cinna)에게 로마를 맡기고는 미트라다테스 정복전쟁에 나섰다.
 
=== 미트라다테스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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