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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년]] 형이자 스승이었던 [[이잠 (1660년)|이잠]]이 [[당쟁]]의 여파로 희생된 후 그는 벼슬의 뜻을 버리고 평생을 첨성리에 칩거하였다. 성호(星湖)라는 호수가 있어서 그의 호도 여기에 연유된 것이며, 그의 저택은 성호장(星湖莊)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조상들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 사령(使令)과 기승(騎乘)을 이어가지고, 재야의 선비로서 일평생 은둔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속에서도 직접 농사를 지으며 후학을 양성하고, 100권의 서적을 집필하는등 열정적으로 학문과 생계 모두에 열중하였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직접 농사지을 것을 권고했는데 그의 신념인'사농합일 (士農合一)'은 곧 '선비는 농사로써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그는 자신의 이론을 직접 실천하였다. 그는 농사를 지었기에 그의 학문은 주로 농사와 관련된 연구서도 있었다. 또한 그의 견해 중에는 간척사업을 활발히 하여 농토를 늘리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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