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세 (동로마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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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황제=[[마르키아누스]]
|다음 황제=[[레오 2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2세]]
|목록=[[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로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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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세'''(Flavius Valerius Leo, [[401년]] - [[474년]])는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로마 제국의 황제]]로 [[457년]]부터 [[474년]] 죽을 때까지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트라키아]] 출신으로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레오 왕조]]를 열었다.
 
레오는 정통파 그리스도 교인이었고 당시 막후의 실력자인 [[아스파르]] 집안의 집사였는데 [[457년]]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후계자 없이 죽자 아스파르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457년]] [[2월 7일]] 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인 아나톨리우스에게서 공식적으로 제관을 받았는데 이것은 비잔티움로마 제국에서 처음있는 일로 이후로 황제는 대주교가 집전하는 대관식을 거행해야 했다.
 
아스파르는 그를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자신의 권력을 누리려 하였으나 레오는 곧 그와 투쟁하였다. 레오는 아스파르의 권력의 배경인 게르만족 군부를 대신하여 [[이사우리아]] 출신의 [[제논 (황제)|제논]]을 등용하고 아스파르를 견제했다. [[457년]] 즉위 후 레오는 [[서로마 제국|서방 황제]]로 [[마요리아누스]]를 승인했다. [[461년]] 마요리아누스가 중고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서방 황제로 추대되자 이를 승인하기를 거부하고 마르키아누스의 사위인 [[안테미우스]]를 서로마 황제로 임명했다.
* 함대- 1,113척
* 병력- 약 10만 명
원정 초반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사르데냐]]에서 반달족을 몰아내었고 헤라클리우스라는 장군은 [[카르타고]] 남동쪽을 공략했다. 그러나 바실리스쿠스가 이끄는 본진은 북아프리카에서 상륙한 이후 곧바로 진군하지 않고 머뭇거렸고 그 사이 가이세리크는 항복할 테니 닷새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바실리스쿠는 그 계략에 넘어갔고 닷새후 나타난 가이세리크는 때마침 바뀐 바람의 힘을 빌어 로마군의 함대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바실리스쿠는 겨우 도망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망쳤고 황제는 진노하여 그를 죽이려했으나 황후의 간청으로 목숨을 살려주었다. 레오와 가이세리크는 강화를 맺었고 이때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이 입은 피해는 거의 30년 동안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을 괴롭혔다.
 
[[471년]] 레오는 아스파르를 궁정에서 죽이는 데 성공하고 자신의 황권을 강화했다. 그는 죽기 다섯 달 전인 [[473년]] 10월 손자인 [[레오 2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2세]]를 공동황제 겸 후계자로 임명하고 [[474년]] [[2월 3일]] 죽었다.
|후임자=[[레오 2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2세]]<br />(재위 474 - 474)
|임기=[[457년]] - [[474년]]
|직책=[[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로마 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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