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문헌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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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서의 종류 ==
위서는 기본적으로 책의 이름, 저자, 내용 등을 위조한 것이다. 그러므로것으로 위조한 부분에 따라 위서를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기본이다.<ref>량치차오, 《고서의 진위와 그 연대》</ref>
* 책의 모든 부분이 위조
* 책의 일부분이 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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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서에 대한 오해 ==
위서는 사료의 위작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사료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킨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위서라는 개념을 사료의 내용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내용의 진실성을 밝히면 위서 시비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ref>이덕일, 〈환단고기(桓檀古記)는 과연 후세의 위작(僞作)인가?〉,《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김영사 <br /> 이일봉, 《실증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등</ref> 위서 시비에서 중요한 것은 '''사료의 정체'''이기 때문에 내용의 진실성 여부는 관계가 없다. 같은 관점에서 위서로 판명되었다고 해서 사료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산해경》은 [[삼황오제]] 시기에 성립된 책이라고 전해지나 실제 성립 연대는 [[주나라]] 시대에서 [[한나라]] 시대까지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산해경》의 내용을 거짓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 위서의 논란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다. 이 문서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에게 서로마 지역의 종교적·세속적 통치권을 바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440년]]에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가 위서임을 밝혀냈다.<ref>{{브리태니커|b08b4068a|발라}}</ref> 근대 역사학에서는 기독교의 구약 및 신약 성경의 각 편들이 실제로 성립된 연대 등을 밝혀 위서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부터 서적을 연구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훈고학을 통해서 [[진시황]]의 분서, 한자의 변화 등으로 일실된 유교 경전을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 유학의 성인이 저술한 것이 아닌, 위작된 경전들이 성립되기도 하였다. [[청나라]] 시대에 발달한 고증학은 이러한 경전이나 금석문의 진위 판별에 많은 성과를 낳았으며 [[량치차오]], [[캉유웨이]], 구제강(顧頡剛) 등이 주도한 의고학파(疑高學派)는 철저한 실증을 통해서 많은 유교 경전이 위작되었음을 고증하기도 했다.<ref>캉유웨이,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1891</ref>
 
한국에서 위서 시비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한 책이라고 하나 사료비판을 통해 실제 성립 연대가 1911년이 아님이 밝혀졌다. 주로 [[재야사학]] 계열에서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가 많이 등장하였는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이 있지만 이러한 재야사학 계열의 역사서는 강단사학에서 위서로 치부하여 인용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재야사학자 및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환단고기》 등의 사료를 민족의 역사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환단고기]]》중에 하나인 《[[단군세기]]》(檀君世記)는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행촌(杏村) 문정공 이암(文靖公 李嵒)이 저술한 책으로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각기 다른 시대에 쓰여진 5권(4종류)의 책과 함께 소중한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현재 위서 여부를 놓고 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료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위서로 보고 있으나 [[이종욱]] 교수를 필두로 한 일부 학자들은 진서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대표적인 위서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다. 이 문서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에게 서로마 지역의 종교적·세속적 통치권을 바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440년]]에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가 위서임을 밝혀냈다.<ref>{{브리태니커|b08b4068a|발라}}</ref> 근대 역사학에서는 기독교의 구약 및 신약 성경의 각 편들이 실제로 성립된 연대 등을 밝혀 위서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부터 서적을 연구하는 훈고학이 발달하였는데, 훈고학을 통해서 [[진시황]]의 분서, 한자의 변화 등으로 일실된 유교 경전을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 유학의 성인이 저술한 것이 아닌, 위작된 경전들이 성립되기도 하였다. [[청나라]] 시대에 발달한 고증학은 이러한 경전이나 금석문의 진위 판별에 많은 성과를 낳았으며 [[량치차오]], [[캉유웨이]], 구제강(顧頡剛) 등이 주도한 의고학파(疑高學派)는 철저한 실증을 통해서 많은 유교 경전이 위작되었음을 고증하기도 했다.<ref>캉유웨이,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1891</ref>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