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베넨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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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시절의 사회운동 ===
[[파일:Bundesarchiv Bild 102-13774, Adolf Hitler.jpg|180px|섬네일|오른쪽|[[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1936년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주도로 한 내전이 일어났으며([[스페인 내전]]),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이들이 고아가 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16세 때 베넨슨은 이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으로 운동가가 되었다.<ref name="peter" /> 프랑코군의 잔인함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정부군을 지지하는 학생 단체를 설립했으며 고아가 된 정부군의 아이들을 도왔다.<ref name="peter" /> 그는 한 아이를 양자로 삼아서<ref name="peter" /> 양육비를 보내 주기로 약속했는데,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정치 활동이었다. 하지만 정부군은 패했고, 양자로 삼았던 아이와도 교류가 끊겼다.
 
한편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자 그는 또 다른 운동을 시작했는데,<ref name="peter" /> 이는 스페인에서 했던 운동보다 몇 배나 더 큰 규모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학교친구들과 모금활동을 하여 4천파운드를 활동자금으로 모았으며,<ref name="peter" /> [[유대인]] 어린이 두 명을 데려다가 교육받게 했다. 또한 영국 정부가 1만 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의 입국을 허락하자 이들을 돕는 일을 했다.<ref name="peter" /> 이 무렵 그는 학교를 떠나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고,<ref name="peter" /> 한편으로는 유대인 아이들에게 새 집을 주는 일을 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
1939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베넨슨은 즉시 영국 해군에 지원했으나 어머니가 러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입대할 수 없게 되었고, 이어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했다. 이듬해인 [[1940년]]에 입대함으로써 군 복무를 시작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이 정보부에서 [[암호]]해독을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훗날 결혼하는 마거릿 앤더슨을 만나게 된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났으나, 연장자가 먼저 군을 떠난다는 규정 상 곧바로 재대할 순 없었다. 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법률 공부를 시작했고, 2년 뒤 변호사를 준비했다.<ref name="peter" /> 이후 군을 떠났다. 한편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은 그는 곧 노동당에 입당했다.<ref name="peter" />
 
=== 변호사가 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