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8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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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1세가 요한 12세를 교황직에서 폐위시키기 위해 로마에 입성했을 당시 레오는 교황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ref>Mann, pgs. 260 & 280</ref> 오토 1세에 의해 소집된 시노드에서는 [[티볼리]]로 달아난 요한 12세를 교회법을 무시하고 폐위시켰으며, 새로운 후임자를 모색했다. 그리하여 963년 12월 4일 오토 1세의 추천에 따라 평신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레오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ref>Mann, pgs. 260-261</ref> 그리하여 레오는 당시 평신도였기 때문에 오스티아의 주교급 추기경인 시코에 의해 단 하루 만에 수문품, 독서품, 시종직, 차부제품, 부제품, 사제품을 모두 받아 사제가 되었으며, 이틀 후인 963년 12월 6일에는 주교로 서임되어 교황좌에 착좌하였다.<ref>Gregorovius, pg. 348</ref> 한편 요한 12세는 권좌에서 쫓겨났지만, 로마에는 여전히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로마의 귀족들에게 봉기를 일으켜 오토 1세를 물리치고 레오 8세를 죽일 것을 요구하며 그 댓가로 엄청난 양의 뇌물을 주었다. 그리하여 964년 1월 초에 로마인들이 대거 봉기를 일으켰지만, 오토 1세의 군대에 의해 바로 진압되었다. 로마 귀족들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던 레오 8세는 오토 1세를 설득하여 인질로 잡은 로마인 귀족들의 가족들을 풀어 주도록 하였다.<ref>Gregorovius, pg. 349</ref> 하지만 오토 1세가 964년 1월 12일에 로마를 떠나자마자, 로마인들은 다시 봉기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레오 8세는 964년 2월경에 로마를 빠져나와 오토 1세에게 달려가 피신하였다.<ref>Mann, pg. 262</ref>
 
그 해 2월 로마로 귀환한 요한 12세는 즉각 [[로마 시노드 (964년)|시노드]]를 소집하였다. 시노드에서 그는 964년 2월 26일 레오 8세를 교황직에서 폐위시킴과 동시에 파문하였다.<ref>Gregorovius, pgs. 350-351</ref> 그동안 레오 8세는 오토 1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964년 4월 요한 12세가 선종하자, 로마인들은 후임자로 [[교황 베네딕토 5세]]를 선출하였다. 그러자 오토 1세는 레오 8세를 데리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로마를 포위 공격했다. 그리고 로마인들이 결국 오토 1세에게 항복하면서, 레오 8세는 [[라테라노 궁전]]에서 교황으로 다시 즉위하였다.
 
레오 8세는 허물이 없는 평신도이자 국가 공무원이었다. 그는 [[교황 요한 12세]]의 사건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1세]]에 의해 로마 지방 [[공의회]]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하루 만에 모든 품을 받고 교황좌에 올랐다. 그는 오토 1세가 개정하여 이탈리아에 도입된 새 전례에 의하여 취임한 첫 번째 교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