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1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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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로마의 세속 통치자로서의 모습와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요한 12세는 후자보다는 전자로서의 활동에 더 치중했던 것으로 보여진다.<ref>Gregorovius, p. 329.</ref> 그의 재임기간을 기록한 문헌을 보면, 그는 피부가 거칠고 부도덕한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라테라노 궁전]]을 매음굴로 만들었으며, 로마의 도덕적 타락은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성직자가 된 이후에도 그의 생활은 이전에 세속 시절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으며, 그의 정치적 적대자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비난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더럽히고 그의 폐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크레모나의 리우트프란트는리우트프란트]]는 오토 1세의 편에 서서, 요한 12세를 비난했다. 심지어 그는 요한 12세가 로마 시외에서 유부녀와 난잡한 행위를 벌이던 와중에 뇌졸중으로 사망했거나 또는 분노한 남편의 손에 맞아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f>Mann, p. 264.</ref>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인물인 베로나의 라테리우스 또한 요한 12세의 부도덕항 행동을 비난하는데 가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