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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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 [[사제]]의 주도로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민중들은 [[차르]]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버지로 믿었다.
 
1905년 11월1월 22일 사제 가폰 신부를 필두로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노동조합의 설립과 근로조건의 향상들을 아버지 [[차르]]에게 요구하였으나, 차르는 그 요구에 무력진압으로 답했다. 비무장한 시위대를 상대로 [[차르]]의 군대가 발포하였고, 달아나는 군중들을 기마대가 추격하여 학살, 이날 하루에만 3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르]]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러시아 제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다, [[자본가]]의 착취와 [[노동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맞선 온갖 [[파업]]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1905년]] 5월 [[흑해]]의 [[포템킨 호]]의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루마니아]] 정부에 항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