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이 (종교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Koreanlayman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Koreanlayman (토론 | 기여)
34번째 줄:
그녀는 한 편지에다가 이렇게 기록했다.
 
{{인용문2|[[순교]]로 제 부모를 잃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하지만, 제가 [[천국]]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위로가 되며 [[순교]]의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840년]] [[2월 1일]], 최영이는 [[한양]] 근교의 [[당고개역|당고개]]로 압송되어 [[이문우 요한]]과 [[홍영주 바오로]]와 함께 [[참수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23세였다. 그 전날에는 최영이의 어머니가 처형 받아 순교하였는데, 모녀가 같이 순교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조선]]의 [[형법]]에 따르면 친족을 같은 날에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시복 · 시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