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쇼나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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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세이 쇼나곤은 잘났다고 으스대며 자기가 제일이라고 뻐기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잘난 척하며 여기저기에 써놓은 한문 글귀를 보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남보다 더 뛰어나 보이려고 애쓰고 과장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나중에는 오히려 남보다 뒤떨어져 초라한 말년을 보내기 일쑤지요. 항상 풍류 있는 척 행동하는 사람은 그것이 몸에 배어 외롭고 무료할 때도 무슨 큰 감동이나 받은 것처럼 과장해서 행동하고 흥취 있는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부산을 떨게 됩니다. 그러니 남 보기엔 저절로 천박하고 부담스러운 행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사람은 끝말이 좋을 수가 없지요.|구로카와본(黑川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중}}
 
세이 쇼나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와의 라이벌 관계는 후세에 숱하게 회자되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세이 쇼나곤이 궁정에서 물러나고 훨씬 뒤에야 중궁 쇼코의 뇨보로서 입궐하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직접 대면하기는 커녕 얼굴도 마주한 적이 없었지만<ref>다만 이에 대해서 일본의 사학자이자 고문학자였던 쓰노다 분에이(角田文衞, 1913년~2008년)는 「만년의 세이 쇼나곤(晩年の清少納言)」이라는 논문에서, 곤노다이나곤(權大納言) 후지와라노 유키나리(藤原行成, [[972년]]~[[1028년]])의 일기 《권기(権記)》에 등장하는 이치노미야(一宮) 아쓰야스 친왕(敦康親王)의 궁녀 「쇼나곤 묘부(少納言命婦)」를 세이 쇼나곤으로 비정하여, 그녀가 데이시 사후에도 데이시 소생의 황자, 황녀들을 섬겼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ref>, 무라사키 시키부가 그녀의 일기에서 세이 쇼나곤의 인격과 실적을 모조리 부정하려는 듯한 악의적인 기록을 남긴 것에 비해 세이 쇼나곤은 그녀의 수필 《마쿠라노소시》에 무라사키 시키부에 대한 어떠한 평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마쿠라노소시》에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죽은 아버지 후지와라노 노부타카(藤原宣孝)가 아들 다카미쓰(隆光)와 함께 화려한 의상을 갖추고 긴푸 산 참배를 했다는 일화라던가<ref>《마쿠라노소시》115단 '애처로운 것'.</ref> 시키부의 사촌형제인 후지와라노 노부쓰네를 세이 쇼나곤이 비판한 이야기<ref>같은 책 99단 '노부미쓰와 세족'.</ref> 등이 수록되어실려 있는데, 이러한 기술들은 무라사키 시키부의 재능에 세이 쇼나곤이 위협을 느껴서 적은 것이라는 설도 존재하고 있다.
 
== 기요온나(淸女) 전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