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고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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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高朱蒙)'''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북부여의 왕인 해모수(解慕漱)였다. 이것은 그가 동부여에서 태어났는데도, 고구려 왕실의 법통의 근원을 [[북부여]]에 두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요령성|만주 요령지역]]의 요양 고씨(시조 [[장수왕]])<ref name="Liaoning Gao">[http://www.palhae.org/zb4/download.php?id=pds2&page=12&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EA%B4%80%EB%A6%AC%EC%9E%90&select_arrange=hit&desc=asc&no=26&filenum=1 만주에 거주하는 장수왕 후손에 관한 연구], 만주에 거주하는 장수왕 후손에 관한 연구 논문.</ref>, 일본의 [[고마씨]](중시조 [[약광|현무약광]])와 함께 현존하는 [[고구려]](고조 고려高朝 高麗) 왕족의 후손으로, 1824년 발견된 횡성 고씨 족보, 1995년과 2004년 강원일보의 보도기사<ref name="test">[http://www.kwnews.co.kr/nview.asp?s=301&aid=204012800073 언중언 고구려 고씨], 강원일보 2004년 1월 29일 사설.</ref>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즉, 주몽의 어머니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부인(柳花夫人)이 해모수와 정을 통한 뒤 집에서 쫓겨났다. 이 때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유화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상히 여겨 방 속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따라다니며 비치어 태기가 있어 큰 알을 하나 낳았다. 금와왕은 그것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먹지 않았고, 길에 버려도 소나 말이 피해 갔다. 또 들판에 버렸더니 새들이 모여 날개로 덮어 주었으며 알을 깨뜨리려 하였지만 깨어지지 않아 드디어 유화부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에 알을 덮어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왔다. 사내아이의 골격과 생김새는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이미 일곱 살에 스스로 활과 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므로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금와왕에게는 일곱 왕자가 있었는데, 큰아들 대소(帶素)가 “후환이 두려우니 제거함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이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날랜 말에게는 먹이를 적게 주어 여위게 하고, 둔한 말에게는 먹이를 많이 주어 살찌게 하니 왕이 살찐 말을 골라 타고, 여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 마침 왕자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죽이려고 꾀하자, 유화부인이 “멀리 도망가서 큰일을 도모하라.”고 일렀다.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삼아 엄체수에 이르렀다. 이 때 주몽이 강물에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라. 오늘 나를 뒤쫓는 군사가 닥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다. 주몽이 건너자 곧 흩어져 뒤쫓는 군사들은 건널 수 없었다. 한편, 어머니 유화부인이 비둘기 한 쌍을 보내어 보리씨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모둔곡(毛屯谷 : 지금의 渾河流域)에서 재사(再思)·무골(武骨)·수거(獸居) 등 세 사람의 신하를 얻었다.
 
졸본(卒本)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비류수(沸流水)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기원전 37년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하였다. 시호는 동명성왕이다.
 
 
[[요령성|만주 요령지역[[요녕성]]의 요양 고씨(시조 [[장수왕]])<ref name="Liaoning Gao">[http://www.palhae.org/zb4/download.php?id=pds2&page=12&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EA%B4%80%EB%A6%AC%EC%9E%90&select_arrange=hit&desc=asc&no=26&filenum=1 만주에 거주하는 장수왕 후손에 관한 연구], 만주에 거주하는 장수왕 후손에 관한 연구 논문.</ref>, 일본의 [[고마씨]](중시조 [[약광|현무약광]])와 함께 현존하는 [[고구려]](고조 고려高朝 高麗) 왕족의 후손으로, 1824년 발견된 횡성 고씨 족보, 1995년과 2004년 강원일보의 보도기사<ref name="test">[http://www.kwnews.co.kr/nview.asp?s=301&aid=204012800073 언중언 고구려 고씨], 강원일보 2004년 1월 29일 사설.</ref>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 중시조와 본관 ==
중시조는중시조 [[고인승]](高仁承으로, 그는)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寶臧王 [[고장]]高藏의 아들이자 [[고구려 부흥운동]] 시 왕에 추대된 [[고안승]]高安勝의 형이다.
 
고인승의 12세손 민후(旻厚)가 [[강원도]] [[횡성]]에 정착하여 [[횡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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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공파(少尹公派) 고태지(高泰之) (49세손)
 
== [[제주 고씨]]와의 관계구별 ==
현재의 횡성 고씨는 [[제주 고씨]]와 연관이 없는 성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