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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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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의해주도하여, [[성 바오로]]가 순교하고 묻혔다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졌다. 성 바오로의 신봉자들은 성 바오로의 무덤 위에 ‘cella memoriae’라 불리는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최초의 건물은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치세 때 확장되었다.
 
386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치세에 중랑(中廊)과 더불어 네 개의 측랑(側廊)과 익랑(翼廊)이 추가되면서 대성당을 좀 더 크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지어졌다. 모자이크 작업 등은 [[교황 레오 1세|성 대 레오 1세 교황]]의 재위 때까지 끝마치지 못했다. 5세기까지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옛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규모가 더 컸다. 그리스도교도[[기독교]] 시인 [[프루덴티우스]]는 황제 [[호노리우스]]의 치세에 보았던 몇몇 기념물들의 화려함과 표현이 풍부한 선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은 5세기 [[오스티아]]의 순교자들이었던 [[성 타우리노]]와 [[성 헤르쿨라노]]에게도 봉헌되었으며, ‘세 분 주님 대성당’이라는 뜻의 ‘트리움 도미노룸 대성당(''basilica trium Dominorum'')’이라고 불렸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치세에 대성당은 다시 광범위하게 수정되었다. 성 바오로의 무덤 위를 일직선으로 덮은 제대를 한층 높여 치장하였다. 무덤 위에 세워진 제대로 말미암아 성 바오로의 무덤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 기간에 대성당 근처에 성 아리스토 수도원과 성 스테파노 수녀원 등 수도원 두 곳이 생겼다. [[교황 심플리치오|교황 성 심플리치오]]는 로마의 명의본당에 사제들을 임명하여 대성당들에서 일주일간씩 교대로 근무하도록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사제와 수도원들이 이를 거부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2세|교황 성 그레고리오 2세]]는 이러한 대성당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전에 대성당을 관리하던 수사들을 복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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