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사 나리마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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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쇼 10년(1582년) [[혼노지의 변|혼노사 정변]]이 일어났을 때, 호쿠리쿠 방면군은 우에스기 군의 마지막 거점인 엣츄 우오즈 성을 떨어뜨렸으나, 혼노사 정변이 각 장수한테 전해지자 장수들은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기 때문에 우에스기군의 저지를 받게 되었고, 결국 [[시바타 가쓰이에]]의 몰락 원인이 된다.
 
삿사 나리마사는 [[우에스기 가게카쓰]]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시즈가타케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숙부인 [[삿사 헤이자에몬]](佐々平左衛門)를 지원군으로 보냈었다. 시바타 가쓰이에가 패배한 이후, 마에다 도시이에의 배반과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압박으로 딸을 인질로 보내고 머리를 삭발하는 것으로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였다. 텐쇼 12년 ([[1584년]]), [[코마키ㆍ나카테루 전투]]가 일어나자 삿사 나리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측으로 가담하지 않고, 여름 무렵이 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카쓰 (1558년)|오다 노부카쓰]] 측에 가담하였다. 그렇게 되어, 히데요시 측에 붙었던 마에다 도시이에와의 [[스에모리성 전투]]가 일어났고, 이 때 [[에치고 국|에치고]]의 우에스기 가게카쓰와도 관계가 나빴기 때문에 양쪽으로 공격을 당해 고전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화의가 성립되자, 삿사 나리마사는 이에야스의 재기 독촉을 위해 히다 산맥을 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났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1583년]], 히데요시가 10만 대군으로 토야마 성을 포위하였다. 삿사 나리마사는 오다 노부카쓰의 중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였다. 히데요시의 조정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나, 자신의 영토인 [[엣츄 국]] 동부의 니시카와 군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몰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