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angjinhwa (토론 | 기여) 잔글 →생애 |
Sangjinhwa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
||
24번째 줄:
[[고구려]] 진영에서는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대대로 [[고정의]]가 고연수에게 말했다. "[[당 태종]]은, 안으로는 여러 영웅들을 쳐 없애고, 밖으로는 오랑캐들을 굴복시켜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이는 세상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은 인재이다. 지금 그가 전국의 군사를 이끌고 왔으므로 이에 대적할 수는 없다. 나의 계책은, 군사를 정비하되 싸우지 않고, 여러 날을 두고 지구전을 펴면서 기습병을 보내 그들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저들은 군량이 떨어지면 싸우려 해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 해도 갈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 때만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때이다."
하지만 고연수는 이 말을 듣지않고 당군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3만여 군사를 잃고 포위되어 결국 [[고혜진]]과 함께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그 뒤 [[안시성]] 전투에서 당군의 피해가 계속되자, 이때 고연수·[[고혜진]] 등이 당
하지만 그 계책은 [[당나라]]의 [[장손무기]](長孫無忌)의 반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뒤 당군과 같이 전장에 있었는데, 자신의 행동과 처지를 비관하다가 [[당나라]]로 돌아가서 죽었다.
32번째 줄:
== 군 지휘권에 대한 의문 ==
또한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당시 주필산 전투의 총사령관이 고연수, 고혜진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유는 당시 주필산 전투에 동원된 고구려군 15만명은 당시 고구려 인구 대비 및 각 지역에 이미 배치된 병력을 산정할 때 단일 전투로 동원된 병력으로는 고구려 및 이후 한민족 역사상 최대 규모에 가까우며 이정도 대부대를 총 지휘할 직급으로 당시 북부
따라서 일부 사학자들은 북부[[욕살]] 고연수, 남부[[욕살]] 고혜진은 고구려 15만군의 선봉이었고 총사령관은 당시 사서에 등장하여 전략을 세웠던 대대로 [[고정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사서에 기록된 것 처럼 고정의는 대대로라는 높은 직급과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것으로 기록되어 과거 고구려-수 전쟁 때도 참전한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