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쿠벨리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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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리크]]와 헝가리 백작 부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여섯 번째 아이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4세에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ref name="조홍근">조홍근, 《세계명곡해설대전집》, 진현서관, 1978, p.303~p.304</ref>[[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 바이올린, 지휘를 공부했다. 음악원을 졸업한 [[1934년]]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취임, 데뷔했다.<ref name="박종호">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시공사, p.46~p.49, 2004</ref>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연주 여행에 반주자로서 동행하며 유럽을 순회하기도 했다.<ref name="조홍근"/> 귀국한 뒤에는 [[1939년]] [[브르노]]의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이 되었고 [[1942년]]에는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ref name="박종호"/> 쿠벨릭은 지휘 외에도 교향곡, 실내악곡, 가곡 등을 쓰는 작곡가로서의 작업을 했으며 [[1940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도 썼다.<ref name="조홍근"/> [[1946년]]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의 후원으로 체코 필하모니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제의 지휘를 맡았는데 이것이 [[프라하의 봄 음악제]]의 시작이다. 쿠벨리크는 체코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매우 낙심했고, [[1948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든버러 음악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지휘자로 초빙된 것을 기회로 영국으로 망명해 [[1990년]]까지 체코로 돌아오지 않았다.<ref name="박종호"/> 망명 후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로열 오페라 하우스|코번트 가든 왕립 가극장]]의 음악감독,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감독 등을 지내며 커리어를 쌓았다.<ref name="박종호"/> [[1986년]] 건강상의 이유로 지휘자 자리에서 은퇴했지만 [[1989년]] 체코가 [[벨벳 혁명]]으로 민주화되자 이듬해인 [[1990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요청으로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 출연해 전야제에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스메타나)|나의 조국]]》을 지휘했다.<ref name="박종호"/> [[1996년]]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죽었으며 [[체코]]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묘지]]에 묻혔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