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가쿠에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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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 퇴임 후 ([[1974년]] [[12월 10일]] ~ [[1993년]] [[12월 16일]]) ===
* [[1976년]] - [[미국]] [[상원 (미국) 상원|상원]]의 외교위원회에서 록히드사가 국제적으로 항공기 판매시 뇌물을 헌납했다는 의혹이 부상.
** [[7월 27일]] - [[록히드 사건]]으로 5억 엔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와 외환·외국무역관리법위반 혐의로 비서였던 [[에노모토 도시오]] 등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이때 자민당을 탈당, 다음달에 보석으로 석방됨.
* [[1976년]] 12월 - 제34회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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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7월 - 제40회 총선거에 장녀 [[다나카 마키코]]가 다나카 가쿠에이의 선거구였던 니가타 3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처음으로 당선됨. 이후 자민당에 입당. 그러나 자민당은 선거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해 참패하여 38년 만에 자민당 정권이 무너짐. 비자민당 출신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에 의한 비자민 8당 연립 내각이 성립됨.
* [[1993년]] [[12월 16일]] - 향년 75세로 사망. [[니가타 현]] [[가시와자키 시]]에 있는 자택에 묻힘, [[록히드 사건]]은 상고심 심리 중 기각됨.
 
=== 사망 이후 ===
* [[1995년]] 2월 - [[일본 최고재판소|최고재판소]]는 [[에노모토 도시오]]의 [[록히드 사건]] 상고심 판결에서 다나카 가쿠에이의 5억엔 수수 혐의를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