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드레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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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outherbourg-Spanish Armada.jpg|thumb|230px|칼레 해전]]
[[1585년]]에 엘리자베스 시덴햄(Elizabeth Sydenham)과 재혼했다. [[1587년]]에는 카디스 만에서 에스파냐 함대를 습격했고, [[1588년]]의 [[:en:Spanish Armada|아르마다 해전]]에서 [[찰스 하워드]]를 사령관으로 하는 영국 함대의 부사령관으로서 잉글랜드 함대의 실질적인 지휘를 맡아, 화약과 기름을 싣고 불을 붙인 배를 적의 함대로 보내는 해적식 전법을 통해 당시 '무적함대'라 불리던 에스파냐 함대를 궤멸시켰다. 그러나 하워드 제독과의 갈등으로 드레이크는 부제독 자리에서 해임된다. 드레이크는 하워드 제독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며, 약탈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함대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가 약탈한 금을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친 덕분에, 실질적으로 전쟁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파산 위기에 몰렸던 영국 왕실의 재정은 당시 징발된 상선과 군사에게 후한 급료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해졌고, 이때문에 드레이크를 실질적인 전쟁의 최고 공로자라고 보기도 한다.
 
드레이크의 뱃사람으로서의 경력은 그가 오십줄에 접어들 때까지 이어졌다. [[1595년]]의 에스파냐령 아메리카와의 싸움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뒤, 푸에르토리코의 [[산 후안]]의 싸움에서 패한다. 산 펠리페 델 모로 섬(Fort San Felipe del Morro)에서 에스파냐 출신의 포격수가 드레이크가 탄 배를 향해 대포를 쏘았지만, 드레이크는 살아남았다. [[1596년]], 에스파냐의 인디아스 함대가 피난처를 찾고 있던 파나마의 포르토벨로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있던 중 그는 죽었다. 사인은 [[이질]]에 의한 병사였고 그때 그의 나이는 55세였다. 죽기 직전에는 병상에서 갑옷을 입으려고 하는 등 정신착란 상태를 보였다고 한다(죽을 때 멋있게 죽고 싶었던 것이라고도 한다). 생에 자식은 없었으며, 시신은 납으로 만든 관에 넣어져 포르토벨로 부근의 바다에 수장되었다. 오늘날까지 다이버에 의한 수색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