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민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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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자녀 =
|부친 =[[소의 (양)|장사 선무왕장사선무왕 소의]]
|모친 =
|전임자 =[[양 원제|세조 원황제 소역원제]]
|후임자 =[[양 경제|목종 경황제 소방지경제]]
|왕가 =소씨(蕭氏)
|왕조 =[[양 (남조)|남량]]
|묘호 =숙종(肅宗)<ref>[[소장 (양)|소장]](蕭莊)이 올린 묘호이다.</ref>
|시호 =민황제(閔皇帝)<ref>[[소장 (양)|소장]](蕭莊)이 올린 시호이다.</ref>
|서명 =
}}
 
'''소연명'''(蕭淵明, ? ~ [[556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양 (남조)|양나라]]의 제5대 황제이다. 묘호와 시호가 있지만 폐위되었기 때문에 즉위 전의 작위인 정양후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양 무제]]의 형인 장사왕장사선무왕 소의의 아들로 [[양 원제]]의 사촌형제이다.
 
== 생애 ==
무제가 양나라를 세운 뒤 정양후로 봉해졌다.
정양후로 봉해졌고, 후경이 [[동위]]에서 양나라로 항복해 왔을 때, 후경과 함께 동위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였다. 양나라군은 패배하였고, 소연명은 동위의 포로가 되었지만, 살해를 당하지 않고, 작위를 주었지만, 동위에 계속 억류되었고 사실상에 포로였었다.
 
정양후로 봉해졌고, 후경이[[후경]]이 [[동위]]에서 양나라로 항복해 왔을 때오자, 후경과 함께무제는 동위를 공격하기 위해 후경과 소연명에게 군대를 파병하였다이끌게 했다. 그러나 양나라군은 패배하였고, 소연명은 동위의 포로가 되었지만,되었다. 살해를소연명은 당하지살해되지 않고, 작위를 주었지만,받았지만 동위에 계속 억류되었고 사실상에 포로였었다억류되었다.
그 후, 후경의 난에 의해서 양나라는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반란주모자 후경은 전사하여, 후경을 축출하였던 원제도 또 [[서위 (북조)|서위]]의 도움을 받던 [[소찰]]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원제의 신하인 [[왕승변]]과 [[진패선]]은 소방지를 옹립 하지만, 동위를 멸망시킨 [[북제]]는 서위를 멸망시킨 [[북주]]에 대항하기 위해서, 억류를 당하고 있던 소연명은 북제가 군대를 지원을 하자, 양나라 황제 즉위하여 양나라로 향했다. 소연명의 군세에 밀린 왕승변은 그를 황제로 맞이하지만, 소연명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은 진패선과 대립하였고, 결국 왕승변은 진패선을 공격하였지만, 진패선에게 살해당한다.
 
이후 [[후경의 난]]에 의해서 양나라는 쇠약해졌고, 난을 평정한 원제도 [[서위 (북조)|서위]]에게 붙은 [[소찰]]에게 살해되었다. 그러자 원제의 신하인 [[왕승변]]과 [[진패선]]은 진안왕 소방지를 옹립하려 하였다. 그런데 동위를 멸망시킨 [[북제]]는 서위에 대항하기 위해서 억류되어 있던 소연명을 군대와 함께 보내 즉위시킨 뒤에 후방을 튼튼히 하고자 하였다. 북제의 군세에 밀린 왕승변은 그를 즉위시키나 이에 반대하는 진패선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제와 왕승변의 군대에 밀리기 시작한 진패선은 마침내 소방지를 황태자로 세우는 조건으로 소연명을 즉위시키는데 찬성했다.
북제의 지원군도 본국으로 돌아가고 없고, 후원하는 세력이 없던 소연명은 권력을 차지한 진패선에게 폐위를 당하였고, 진패선이 옹립했던 소방지를 복위시켰다. 그 후, 진패선을 그를 북제로 추방하려 했지만, 추방하기전에 병사하였다.
 
소연명이 즉위하자 북제의 군대는 되돌아갔는데, 이 틈을 노린 진패선은 왕승변을 공격해 죽이고 그 일당까지 모두 제거하였다. 이어서 소연명을 폐하고 소방지를 즉위시켰다. 이후 진패선은 소연명을 북제로 쫓아내려 하지만, 그 전에 소연명이 병사하였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