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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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삼국지》에 따르면 변진(변한)은 진한과 잡거(雜居)하였다고 한다. 언어나 법속 등이 모두 진한과 비슷하여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다고 하며, 제사지내는 풍습만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고고학 발굴 결과에서도 변한과 진한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ref>[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55073&v=4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변한 항목]</ref> 낙동강 하구 지역에서 양질의 철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삼한과 [[동예]](東濊), [[왜]](倭), [[한군현]] 등에 수출하였다. 또한 철을 화폐로 사용하였다. 기원전 39년 봄 정월에 변한이 신라(혁거세 거서간 통치 시)에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ref>[[김부식]](1145), 《[[:s:삼국사기|삼국사기]]》 〈[[:s:삼국사기/권제1|권제1]]〉 혁거세 거서간 條 “十九年 春正月 卞韓以國來降”(19년(서기전 39) 봄 정월에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ref>는 기록이 있으나 [[신채호]]는 이는 당시 신라의 국력으로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다<ref> [[신채호]]저, 《[[조선상고사]]》<[[:s:조선상고사/제4편/제4장|제4편 제4장 3. 신라의 건국]]> "초년(初年)에 초창(草創)한 [[신라]]는 경주 한 구석에 의거하여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였는데, '변한이 나라로 들어와서 항복하였다.'느니 , `동옥저가 좋은 말 200 마리를 바쳤다.'느니 함이 거의 사세에 맞지 아니할 뿐 아니라, `북명인 (北溟人)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얻어서 바쳤다.' 함은 더욱 황당한 말인 듯하다. </ref>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변한 지역의 소국들은 가야 연맹을 이루는 소국들로 발전하였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