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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은 '[[함흥]]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1920년대]] 초까지 지명이 없었으나, [[1927년]] 일본의 재벌 [[노구치 시다가후|노구치]]의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비료공장과 장전강·부전강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중화학공업 도시가 되었다.
 
[[1944년]] [[함주군]] 흥남읍과 운남면이 흥남부로 승격되었으며, 당시 인구는 20만여 명이었다. 노구치는 600만 평의 부지에 [[질소]] [[비료]], 경화유, [[화약]], [[카바이트]], [[가성 소다]], [[소다회]] 공장과 [[철강]], [[아연]] 공업단지를 건설하였다. 이곳은 [[중일전쟁]]이후 일본의 군수산업기지로 변화하여, 화약을 비롯하여 각종 첨단 무기, [[비행기]] 외강판, 항공연료 등을 생산하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에 극비리에 [[원폭]]물질 개발연구가 이루어졌다는 비사가 알려지기도 하였다. <ref>노형석, 한국 근대사의 풍경 170쪽, 생각의 나무, 2004년</ref>
 
[[1950년]] [[10월 26일]], [[한국 전쟁]] 당시에는 [[압록강]]까지 올라오던 [[대한민국 육군]]과 [[국제 연합]]군이 [[중화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혜산시|혜산진]]에서 철수한 [[10 군단 (미국)|미국 10 군단]]과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장진호 전투]]를 하고 있던 [[1 해병 사단 (미국)|미국 1 해병 사단]]이 [[장진호]]에서 철수하여 이 곳의 항구에서 집결한 다음, 선박을 통해 남쪽으로 [[흥남 철수 작전|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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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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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44년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