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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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다운동은 [[조선 정조]] 때는 ‘다전’(茶田)이라 하였다. 다전이라고 하는 마을 이름은 [[차나무]]를 심었던 밭이었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알려져 마시는 풍습이 생겼다가 [[828년]] [[흥덕왕]] 3년 12월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한 것이 우리나라 차의 시초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울산군은 토공품으로 [[작설차]]를 바쳤다 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도]] 토산의 하나로 우불산의 차를 들었다. 이러한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아 다전의 차 생산도 그 기원은 오래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숙 등에는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894년]] [[조선 고종|고종]] 31년에 다전과 운곡(雲谷)의 양동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인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 때 다전과 운곡의 두 동과 지금은 서사리(西沙里)에 속해 있었던 신안동(新安洞)의 일부를 합하여 이를 다운리(茶雲里)라 하였다. <ref>[http://www.junggu.ulsan.kr/dong/dong11/info/name.php 다운동 지명유래], 2012년 7월 20일 확인</ref>
 
==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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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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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