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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고인'''(John Burgoyne, [[1722년]] [[2월 24일]] - [[1792년]] [[8월 4일]])은 [[대영제국]]의 장군, 정치가 및 극작가이다. 군인으로서 우선 [[7년 전쟁]]에 종군하여 여러 전투에 참전했지만, 특히 [[1762년]] ‘포르투갈 작전’이 유명하다.
 
버고인은 [[미국 독립 전쟁]]에서의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새러토가 방면 작전]]에서 [[1777년]] [[10월 17일]]에 5,000명의 군대와 함께 미국 [[대륙군]]에 항복했다. 이때 뉴욕 식민지의 올버니를 점령하고 반란을 끝낼 것을 예정한 군대의 지휘관에 임명되어, 버고인은 캐나다에서 진군했지만 곧 적군에게 포위되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러토가에서 두 차례 전투를 벌였지만, 이후 전멸의 위기에 처해 [[호레이쇼 게이츠]]와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아군을 고국에 돌려보내기로 하고, 협의를 시작하기로 동의했지만, 그 조건을 뒤집어 모두를 포로로 잡았다. 버고인은 본국의 분노를 사서 다시는 야전 지휘관의 직업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후 버고인은 극작가로 성공하여 ‘오크스의 하녀’나 ‘[[여상속인]]’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군대의 명성만큼은 아니었다. 미드 허스트와 프레스턴에서 선출된 영국 의회 서민원 의원으로 오랫동안 역임했다. ‘신사 조니’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 생애 ==
존 버고인은 [[1722년]] [[2월 22일]]에 런던에 가까운 베드퍼드셔의 서튼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버고인 준남작 장원인 서튼 매너가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 버고인은 해크니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육군 장교로 추측되는 존 버고인 대위였지만, 그의 대부였던 빙글리 초대 남작의 사생아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빙글리 경은 1731년 사망했을 때 그의 유언장에는 빙글리의 딸이 남자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을 때는 그 자산을 버고인이 승계한다고 밝혀져 있었다.
 
버고인은 10살 때 권위 있는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당시 영국 육군 장교들의 자녀 대부분이 입학했고, 이후 버고인의 상관이 되었던 [[토마스 게이지]]도 마찬가지였다. 버고인은 스포츠가 특기였으며, 사교성이 있어서 학교생활을 즐기고 많은 중요한 친구를 사귀었다. 그 중에는 이후 제임스 스트레인지 경도 있었다. 1737년 8월 버고인은 화려한 기병 연대인 근위 기병 연대의 장교직을 샀다. 이 연대는 런던에 주둔했고, 임무는 가벼웠기 때문에 상류 사교계에서 눈길을 끌게 되었다. 곧 ‘신사 조니’라는 별명을 얻었고, 멋진 제복과 큰 빚에 시달리게 했던 호화스러운 생활이 알려지게 되었다. 1741년 버고인은 (아마도) 도박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장교직을 매각했다.
버고인은 제임스 스트레인지 경과의 우정을 통해, 그 여동생 샬롯 스탠리와 알게 되었다. 샬럿은 영국의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인 더비 백작 에드워드 스탠리의 딸이었다. 더비 경이 버고인와 샬럿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하여 1751년 4월에 아버지의 허락 없이 결혼했다. 분개한 더비 백작은 딸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돈을 끊었다. 버고인은 아내를 부양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관직을 팔아 2,600 파운드를 마련하고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1751년 10월 버고인과 아내는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프랑스에 머물 때 나중에 프랑스 외무장관이자, [[7년 전쟁]] 때 프랑스의 정책을 지휘한 에티엔느 프랑소와 드 스와줄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로마에 있을 때, 영국의 화가 앨런 램지에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1754년 말, 아내가 딸 샬롯 엘리자베스를 출산하였는데, 이 아이가 부부의 유일한 아이였다. 버고인은 1755년에 손녀가 더비 경의 반대를 누그려 뜨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레인지 경이 버고인과 더비 경을 중재하여 더비 경도 마음을 바꿔 부부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버고인은 곧 더비 경의 환심을 사서 더비 경의 영향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 7년 전쟁 ==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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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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