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암스트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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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의 초기 암스트롱은 펜실베이니아 민병대의 준장이 되었다. [[1776년]] [[3월 1일]], [[대륙회의]]는 암스트롱을 [[대륙군]] 준장으로 임명했다. 암스트롱은 남부로 파견되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을 방어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암스트롱은 토목 기술을 살려 방어망을 굳힐 수 있었고, [[1776년]] 6월 영국군의 공격을 능가 할 수 있었다. 찰스 리 장군이 찰스턴 주재군의 지휘관으로 부임했기 때문에 암스트롱은 펜실베이니아 본대와 민병대의 근무로 돌아왔다. 펜실베이니아 정부는 암스트롱을 민병대의 소장에 임명했다. 이 시점에서 대륙군에 종군은 끝났지만, [[조지 워싱턴|워싱턴 장군]]에게 계속 전쟁에 협력했다.
 
암스트롱은 [[1777년]] 9월에서 영국군의 [[필라델피아 방면 작전]]에 대항하는 방위군의 일익을 담당하여, [[브랜디와인 전투]]와 [[저먼타운 전투]]에 참전했다. [[1777년]] [[9월 11일]] 벌어진 브랜디와인 전투에서는 암스트롱의 민병대가 미합중국군의 좌익을 지켰다. 군수물자를 지키는 역할도 있었다. 치열한 전투 후 미군은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항복의 위기에 직면했다. 암스트롱은 어둠을 틈타 파일스 포드에서 물자와 민병대를 무사히 물릴 수 있었다.
 
[[10월 2일]]의 [[저먼타운 전투]]에서 암스트롱은 미군의 우익을 이끌었다. 암스트롱 부대의 역할은 영국군의 좌익 측면을 돌아 역습을 가하는 것이었다. 다른 부대의 행군 지연과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공격은 잘 이루어 졌다. 그러나 중앙 부대가 벤자민 추 하우스라는 큰 돌 저택에서 영국군에 발목을 잡혀 진군이 멈춰섰다. 이후 아담 스테판 부대가 안개 속에서 [[앤서니 웨인]]의 부대를 오인 공격하여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사건으로 미합중국군이 무너졌다. 암스트롱 부대는 저먼타운의 중심부 근처까지 전진하였지만, 큰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암스트롱은 “십중팔구 이기는 전투였지만, 이상하게도 지고 말았다. 도무지 퇴각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라고 불평했다.
 
저먼타운 전투 이후 암스트롱은 현역에서 퇴임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60세가 되자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았고, 오래된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칼라일 자택으로 돌아온 암스트롱은 펜실베이니아 의회에서 [[대륙회의]]의 대표로 선정됐다. 대표를 1777년에서 1780년까지 지냈던 암스트롱은 워싱턴과 대륙군의 강력한 옹호자였다. 암스트롱은 새로운 미국 헌법도 확고히 지지하였고 대륙회의 마지막 회기인 1787년 과 1788년의 대표를 지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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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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