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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桂延壽, [[1864년]] [[5월 20일]]? ~ [[1920년]] [[8월 15일]])는 [[한국]]의 [[종교인]]이며 [[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존인물인지는 의심되고 있다. 자는 인경(仁卿), 호는 운초(雲樵), 세거선천(世居宣川), 일시당(一始堂)이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으로 [[이기 (1848년)|이기]]의 문인(門人)이었으며 태백교도였다고 한다.<ref>단단학회편(이유립), 《환단고기》, 광오이해사, 1979년</ref>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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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교의 《단탁》,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등에 따르면 계연수는 묘향산에서 수도를 하던 도인(道人)으로, 묘향산의 석굴에서 수도를 하던 도중 깨달음을 얻자 갑자기 벽에 새겨진 천부경이 보여 이를 탁본하였다고 한다.([[1916년]]) [[1917년]]에는 이 탁본을 단군교에 보내 해석을 구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환단고기》 및 태백교에 따르면, 계연수는 [[대한자강회]] 출신으로 [[이기 (1848년)|이기]]의 문인이다. [[1898년]]([[무술년]]) 《[[단군세기]](檀君世記)》와 《태백유사(太白遺史)》등의 책을 간행하였고, 이기가 1909년 단학회(檀學會)를 설립한 후 사망하자 뒤를 이어 단학회의 2대 회장이 되었다. [[1911년]]에 《환단고기》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상룡 (1858년)|이상룡]]의 막하에서 참획군정으로 공을 세우는 등 항일운동에 힘쓰다가 [[1920년]]에 만주에서 일제의 밀정에게 살해되었다살해되었다고 한다.
 
== 행적에 대한 의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