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엽 (1563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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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즉위 초 예조 참의·대사성·승지·판결사(判決使)·대사간· 등을 지냈다. [[1610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612년]](광해군 4) 도승지로 왕을 경연에 자주 나가도록 했고, [[대북]]이 집권한 뒤에도 그의 처당숙이 [[이산해]]였던 탓에 관직에 계속 나갈 수 있었다. [[1614년]] 공조 참판이 되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나갔다가 1년 만에 사퇴했다. 그 뒤 [[서인]]들하고 교류하다가 [[인조 반정]]을 지지하게 된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대사성 겸 동지경연·원자사부(元子師傅)가 되어 학제(學制)를 상정했고, 여러 번 다른 직에 전임되었으나, 언제나 대사성을 겸함으로써 이때부터이 때부터 대사성을 겸직하게 하는 선례(先例)를 만들었다. 대사헌을 거쳐 좌참찬·좌부빈객(左副賓客) 등을 지냈다. [[이괄의 난]] 당시 인조에게 공주로 피할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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