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가족 관계: 항목 단계 바꿈
→‎옥사: 오류정정: 향년 36세를 30세로
53번째 줄:
후에 신원되고 난 뒤에도 역적죄가 있던 터라 문중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묻혀 있었는데, [[1965년]]에야 [[광산 김씨]]의 무덤이 모여 있는 광주 무등산 이치(梨峙)로 묘가 옮겨지게 되었다. 밤중에 묘를 이장하던 중 김덕령의 관을 여니 생시와 다름없이 살이 썩지 않고 있어, 이를 본 사람들은 김덕령 장군의 한이 서린 것이라 하여, 광주에서 사진기를 가져와 모습을 남기려 하였으나, 사진기가 흔치 않던 터라, 사진기를 무덤까지 가져와 보니 시신은 이미 검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ref>김영헌, 김덕령 평전 - 임진왜란 최후의 의병장, 광주 (북구 일곡동) : 향지사, 2006년.</ref>하지만 김덕령이 입고 있던 옷이나 철릭 등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현재 광주 [[무등산]]에 있는 충장사에 전시되고 있다.
 
20여일에 걸친 혹독한 심문에 팔다리가 모두 부러진 채 끝내 옥중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사망당시 향년 36세였다30세였다.
 
=== 죽은 이후 관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