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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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미헤일 사카시빌리는 [[2004년 조지아 대통령 선거|2004년 조지아(그루지야) 대통령 선거]]에서 96% 대다수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월에는 헌법 개정안이 의회에 갑자기 나타나 대통령의 권한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게 강화되었고 차기 총리 제도를 만들었다. 주랍 즈바니아가 총리로 임명했고 임시 대통령이었던 니노 부르드자나제는 의장이 되었다.
 
새 대통령은 정부에 나타난 많은 난관들과 직면했다. 23만명이 넘는 [[국내실향민]]들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감에 시달렸다. 분리주의자들의 지역인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의 평화는 러시아와 [[국제 연합유엔]]에 평화유지군과 국가간 기관들에 의해서 감독되었고 상황은 위태위태했다. 수년의 경제 발전과 협상은 지역간 적대감정의 극복이 요구됐다. 상당한 경과는 남오세티야-조지아(그루지야) 충돌에 대한 협상에서 다뤄졌고 협상들은 조지아(그루지야)-압하스 충돌에 대한 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파일:Saakashvili n bush.jpg|thumb|미헤일 사카시빌리(오른쪽)과 [[조지 W. 부시]]]]
장미 혁명 이후에, 조지아(그루지야) 정부와 준-분리주의 아자리아 지도자 [[아슬란 아바쉬제]]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아바쉬제는 트빌리시 당국이 공문서로 [[아드자라에]] 보낸 사카시빌리의 요구를 거절했다. 양측 모두 군대를 동원했고 전쟁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사카시빌리의 최종 제안과 대규모의 거리 시위대는 아바쉬제가 사임하고 조지아(그루지야)를 떠날 것을 강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