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슈코르체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기타 이력= 전범으로 기소된 뒤 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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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슈코르체니'''({{lang|de|Otto Skorzeny}}, 1908년 6월 12일 ~ 1975년 7월 5일)는 [[오스트리아]]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무장친위대]] 대령급 장교인 [[연대지도자]]로 복무했다. 처음엔 [[독소전쟁|동부전선]]에서 싸우다가, 이후 실각당하여 감금된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탈출시키는 [[그랑사소 습격]] 작전을 지휘했다.<ref> [http://www.foia.cia.gov/document/519bdecd993294098d5143a6 http://www.foia.cia.gov]</ref> 또한 연합군 후방에 잠입해 연합군의 군복을 착용하고 교란을 펼치는 [[그라이프 작전]]을 지휘했다. 전쟁 종료 직전에는 [[베어볼프]] 게릴라 작전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라이프 작전이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서 결정된 헤이그 협약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고발당했으나, 1947년 [[다하우 재판]]에서 무혐의 처분 받았다. 이후 구금되어 있다가 1948년 탈옥하여 프랑스, [[스페인국|에스파냐국]]을 거쳐 [[아일랜드]]에 정착해 여생을 보냈다.
'''오토 슈코르체니'''(Otto Skorzeny, [[1908년]] [[6월 12일]] - [[1975년]] [[7월 6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무장 친위대]](Waffen-SS)에서 [[친위대 (나치)|SS]]-[[친위대 중령]](Waffen-SS Obersturmbannfuhrer)이었다. 이후 [[동부 전선]]에서 싸웠고, 실각한 후 수감된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하는 작전도 수행했다. 슈코르체니는 대개 [[그리핀 작전]]의 리더로 알려져 있어 적 전선에 적군 복장과 언어를 사용하는 독일군 병사를 침투시켜 혼란에 빠뜨렸다. 전쟁이 끝난 후 슈코르체니는 [[베어울프|베어울프 게릴라 이동]]을 맡기도 했다.
 
비록 그리핀 작전에 관련해 [[1907년 헤이그 협정]](1907 Hague Convention)에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다하우 군사 법정]](Dachau Military Tribunal)에서 전쟁 후 슈코르체니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슈코르체니는 1948년까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처음엔 [[프랑스]]에서 이후엔 [[스페인]]에서 생애를 보냈다.
== 전전 년 ==
오토 슈코르체니는 [[빈]](Vienna)에서 오랫동안 군역에 봉사해온 [[오스트리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지만 프랑스어와 영어에도 능통하였다. 1920년대 학생시절에는 빈에서 검사(fencer)로 이름을 날렸으며 총 15번의 사적 결투 중에 10번째 결투에서 왼뺨에 긴 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