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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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계책을 내어, 교묘하게 빈성으로 위장한 신야성으로 유인된 조조군은 성안의 복병과 만나 혼란에 빠져 보기좋게 격퇴되고, 기세가 둔화된 조조군은 일시 후퇴했다. 유비는 조조군을 일시에 후퇴시켰지만, 계속해 제2파, 제3파에 대해 신야의 수비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조조군의 재침입하기 전에 신야를 버리고 함께 유종령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가문을 계승한뒤 조조에게 대항할 의사가 있던 유종도 도망친 형 및 선대로부터 형주의 양도를 권고받았던 객장 유비의 동향을 생각하였고 역시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주장한 공신 [[괴월]], [[부손]], [[한숭]], [[채모]]에게 설득되었다. 이에 유표의 무장이던 [[이규 (삼국지연의)|이규]]가 반대했으나 채모에게 처형당한다.
 
결국 조조진영이 전선의 신야를 함락시키자,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결정하기에 이르고 이로 인해 형주의 패권은 조조의 손안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