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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봉환]] 직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신정부의 초안으로서 제시했던 인사안에는 고셋케가 아닌 한닌류(閑院流) 출신의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를 간파쿠,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를 부간파쿠(副関白)로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으며, 도요토미를 제외하고 고셋케가 아닌 간파쿠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간파쿠를 설치한다는 구상도 실현되지 않은 채 끝났다. [[게이오]](慶應) 3년([[1868년]]) 12월 9일(양력 1월 3일)에 내려진 왕정복고의 대호령에서는 셋쇼, 간파쿠, [[쇼군]]직이 모두 폐지되었고 막부 체제와 함께 간파쿠의 역사도 종언을 고했다. 그 후 셋쇼는 천황의 공무를 대행하는 역할로 황태자 등의 황족만이 임명되는 직책으로 부활하여,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주석각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