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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동시에 방송에서 좀처럼 출연하지 않고 잠잠했던 나훈아는 [[1981년]]에《대동강 편지》(월건초/임종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하였으며 MBC 10대 가수 특별가수상을 수상하고 [[1984년]]에 대형 가수 중에서는 [[조용필]]의 다음으로 공식적으로 [[일본]]에 진출하여 데이지쿠 레코드와 계약해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1986년]]에는 "20세기 최고의 가수", "대한민국의 가왕" 이라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나훈아의 인기가 위축되기는 했으나 [[아라기획]]을 설립하여 개인 소속사를 만들며 자신만의 특별한 창법을 고수하면서 끈기를 가지고 음악작업을 하였다. 결국 [[1989년]]에 본인이 직접 작곡하고 작사를 한〈무시로〉(나훈아/나훈아)라는 노래가 많은 조용필을 능가했다 . 명실상부 대한민국대한민국의 가왕은 나훈아나훈아와 조용필이었다
 
이후 나훈아는 일반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에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의《나훈아 특집 쇼》뿐이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젊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뜸한 방송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단독공연에 관객들을 몰려들게 했고 한층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다. 또한 주로 서정적이면서 슬픈 로맨스틱한 본인의 자작곡들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라는 곡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신인 가수들의 등장으로 이전 만큼보다는 활동이 뜸했으나 자신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표 가수로서 그 맥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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