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가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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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 배우]]를 꿈꾸던 남진은 약 2년 간 [[한동훈]] 음악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1964년]]에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면서 [[팝]] 가수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여러 팝 스타일의 노래들을 불렀지만 히트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 장기순 씨가 즐겨불렀던 남진의 트로트 곡 〈울려고 내가 왔나〉가 처음으로 히트하자 일찌감치 [[트로트]]로 전향하였으며 [[1967년]],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아프게〉를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남진의 직업은 가수였지만 [[1967년]], [[박상호]] 감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처음 출연하면서 부터 영화 배우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 해에 [[장일호]] 감독의 영화 《그리움은 가슴마다》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는데 [[국도극장]]에서 처음 개봉하여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시킨 흥행작으로 지방에서도 폭발적인 흥행기록을 올렸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남진은 정치인 사모님들과의 유대관계 때문에 김종필의 눈 밖에 나는 일로 인해 갑작스럽게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해병 2여단 2대대 5중대 2소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됬다가 연예병사로 보직변경하며 무사히 전역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역 후,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복직 당시 여러 가수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정통 트로트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을 기점으로 팝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스타일 곡 〈마음이 고와야지〉, 〈그대여 변치마오〉, 〈님과 함께〉를 주로 불렀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춤사위를 선보이며 대중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고 톱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되면서 [[1970년대]]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서로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의 가수로서 지역 사이에서 경쟁을 벌였으며 박친감 넘치고 활발한 성격과 조용하고 서정적인 성격을 가진 두 가수의 차이점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대한민국 가요계 판도를 들었다 놨다하면서 1970년대의 가요계를 이끌었다. 당시 가수왕상에는 줄곧 남진이 1등을 하여 가수왕상을 수상하고 나훈아는 2등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기록되었고, 전성기를 맞이한 남진과 나훈아를 꺾을 가수가 거의 없었다.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도 남진은 또한 뛰어난 외모로 영화계에서도 알아주는 미남배우여서 주연으로 여러 번 캐스팅 되었다. 한창 바쁠 시기에 유명한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약 60 여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1976년]], 남진은 가수 [[윤복희]]와 결혼을 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끌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가정폭행과 연루되어 결국 3년 7개월만인 [[1979년]] [[3월 9일]], 파혼하게 되었다. 남진과 나훈아는 결혼과 동시에 방송 출연이 줄어들고 [[조용필]]이라는 실력파 가수의 등장으로 점차 가요계의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쯤,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남진은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이 시점으로 부터 남진은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두 번째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몇 년간 미국에서 지내다가 [[1983년]]에 귀국하여 〈빈잔〉을 발표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남진의 귀국과 함께 남진은 정통 트로트 〈빈잔〉이 히트하였다. 그렇지만 약 3년 간의 공백으로 가요계에는 수많은 가수가 등장하였고 결혼 후 신인시절처럼 그다지 인기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 [[1985년]] 쯤에는 일본에 진출하여 앨범을 발표했지만 다른 가수처럼 히트치지는 못했다. 가수 복직이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고향으로 내려가 유흥업소를 운영하였다. [[1989년 11월]], [[목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남진은 [[조직 폭력배]]로 부터 테러을 당해 중상을 입어 몇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이 퍼지자 한동안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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