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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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각각 구속된 뒤, 대검찰청은 박연차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받은 15억원 차용증을 확보한다. 2009년 1월, 이인규가 중앙수사부 부장에 임명되었고, 홍만표가 수사기획관에, 우병우는 중앙수사1과장에 임명되었다. 이 후 중수부는 3월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추부길 전 비서관,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을 구속했고, 4월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우병우는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으며, 윗선의 반대해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ref name="pro" /> 언론에 유출되던 수사과정과 논두렁에 억대 시계를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악의적 보도에 시달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5월 23일 자살하게 되고, 결국 이에 책임을 지고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을 하였다.
 
우병우는 이 후에도 [[천성관]] 사태 끝에 김준규가[[김준규]]가 검찰청장에 임명되자, 김준규와 함께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며 맺은 인연으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을 거쳐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되었다.<ref name="pro" />
 
== 가족 및 재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