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지 (종교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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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지는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을 울었으나, 수감된 교우들의 위로와 격로로 용기를 얻었다. 정원지는 그에게 [[천주교]]를 가르친 사람을 발설하라며 [[고문]]을 받았는데, 그는 자신의 스승은 [[순교]]한 아버지 뿐이라고 답했다. 형리들은 정원지가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오히려 [[천주교]]를 실제로 믿도록 한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정원지는 [[천국]]에서 자신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천주교]]를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문]] 받았지만, 그에게서 어떠한 약한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1866년]] [[12월 13일]], 그는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글이 담긴 편지를 남긴후, 교우들 몇 명과 함께 [[전주]] [[숲정이]]의 [[사형]]장으로 압송되었다. 그 길에 물을술에 마시던취한 한 관리가 정원지를 조롱하고 [[천국]]을 저주했다. 이에 정원지는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것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주하는 것과 같음을 어찌 모르시오?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사형]]장으로 압송되는 모든 [[천주교]]인들은 모두 매우 행복하고 평온해 보였으며 [[기도]]하고 있었다. [[1866년]] [[12월 13일]], 정원지는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므로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 시복 · 시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