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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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뇨는 로마 이전 기간(대략 기원전 8세기)에 [[움브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진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95년에 벌어진 [[센티눔 전투]] 이후에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하였고, 이 지역의 토착 신인 풀지니아(Fulginia)의 이름에서 따온 ''풀기니아이''(Fulginiae)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고대 로마 시대에 [[무니키피움]]의 지위를 처음 획득하였고, 이후에 행정 구역과 옛 [[플라미니아 가도]]가 지나가는 도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마 제국]] 후기에 가서는 쇠퇴하기 시작하여,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스폴레토 공국]]의 영토가 되었고, 881년에는 [[사라센]]인들에게 약탈됐고 915년에는 [[헝가리인|마자르인]]들에게 파괴되었고 924년경에 재차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거주민들은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고, 3세기 경에 주교와 순교자들이 묻힌 벽으로 둘러쌓인 교회가 있는 치비타스 산티 펠리시아니(Civitas Sancti Feliciani) 인근에 정착하였고, 곧 그곳은 번성하였다. 이렇게 새롭게 정착된 장소는 [[리우트프란드]]가 이끄는 [[롬바르디아족]]에게 파괴된 이웃 도시들의 사람들을 이끌었다.
 
폴리뇨는 회복되어 계속 성장하였고 1165년에는 [[프리드리히 1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1세]] 덕에 자유 도시 지위를 얻었다. 폴리뇨는 [[구엘프]] 세력에 먼저 편을 들다가, [[프리드리히 2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2세]] 휘하 사령관 중 한명인 코라도 구이스카르도(Corrado Guiscardo)가 도시를 장악한 후, [[기벨린]] 세력이 되어 구엘파 세력인 [[페루자]]와 격렬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 1305년에 [[트린치 가문]]의 강력한 구엘프 세력이 이곳을 포위할때까지 13세기 동안에 여러 차례 세력이 바뀌었고, [[성좌 (가톨릭)|성좌]]의 반독립적 지위를 취했다.
 
== 자매 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