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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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밀은 1818년에 《[[영국령 인도의 역사]]》를 출판했다. 그 즈음에 열 두 살이 된 존 밀은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치밀하게 공부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들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듬해에는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공부했다. 이는 자본, 노동, 토지를 생산의 삼요소로 바라보는 고전경제학의 시각이 밀 부자에 의해 완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 밀은 산책시간을 이용해서 아들 밀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했고, 아들은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여 교정을 받았는데,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이 책은 리카도 경제학을 충실하게 답습한 교과서로서 당대를 풍미했다. 리카도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소년 존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인용문|그 교수법은 한 사람의 사상가를 양성하기
열 네살 때 밀은 [[제러미 벤담]]의 동생 [[사뮤엘 벤담]]의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일년을 보냈다. 프랑스 산악지방의 풍경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일생동안 산골 경치를 좋아하도록 이끌었다. 아울러 프랑스 사람들의 활발하고 친근한 생활태도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몽펠리에의 과학대학({{llang|fr|Faculté des Sciences}})에서 화학, 동물학, 논리학 강의를 들었고, 개인교습을 통해 고등수학을 배웠다. 오가는 길에 파리에 들러서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유명한 경제학자 [[세이]]의 집에서 며칠 묵기도 했다. 거기서 밀은 자유당의 여러 지도자들을 만났고, 또 생시몽과 같은 파리의 저명인사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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